정년(만 60세) 전에 조기 퇴직한 공무원이 각종 협회나 조합으로 옮겨가는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고위 공직자에게 사문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정년제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관료적 계급사회에서 승진 적체가 있는 것이 현실인 만큼 승진에서 탈락하거나 한직으로 밀려나는 고위직을 위해선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다.

진재구 한국인사행정학회장(청주대 교수)은 “은퇴 시기에 접어든 공직자가 전문성과 경륜을 발휘할 수 있도록 공직에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추가 승진이 어려워 자의반 타의반으로 옷을 벗어야 하는 관료에 대해 임금 조정으로 법적 정년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자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사무관-서기관-부이사관-이사관-관리관으로 서열화돼 있는 계급구조에 민간의 고문 자문역 등의 직제를 도입해 고참 관료들이 일종의 ‘싱크탱크’로 해당 기관에 남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금은 현직 때의 월급보다 낮되 퇴직연금은 웃도는 범위에서 설정해 장기 근속을 유도하자는 주장이다.

현행 순환보직제를 개편,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경로제’를 병행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부 교수는 “현재 각종 협회나 단체가 공무원들의 ‘보험’처럼 활용되고 있다”며 “공무원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갖고 민간에서 새로운 직장과 삶을 찾을 수 있도록 특정 경로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취지로 계급을 세분화해 순환 보직을 줄이고 근속연수를 늘리는 방안도 제시됐다. 조성한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5급에서 4급으로 바로 승진시키지 말고 5급 내부를 갑·을·병 등으로 세분화하고 보직 순환을 줄이면 공무원의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공무원의 연봉을 싱가포르 수준으로 인상해 이들이 노후를 충분히 대비할 수 있게 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박천오 명지대 행정학 교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공무원 연봉 인상은 국민 정서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 임금피크제

잡 셰어링(job sharing)의 한 형태로 일정 연령이 된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 한국의 일부 기업 및 금융회사가 적용하고 있으며 미국 유럽 일본 등은 공무원과 일반 기업을 대상으로 선택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