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디 류 "47세에 뛰어든 정치…도전정신이 나를 만들었다"
미국 첫 한인 여성 시장, 재미동포 여성 최초 재선 하원의원.

신디 류(한국명 김신희·57·사진) 미국 워싱턴주 하원의원 앞에 붙는 수식어다. 다음달 3선 출마로 다시 ‘최초’에 도전하는 그가 고국의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방한했다. 류 의원은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는 ‘2014 찾아가는 재외동포 이해교육’ 프로그램의 강사로 초청됐다. 선거 준비로 빠듯하지만 1주일의 시간을 내 한국으로 달려왔다.

지난 28일에는 경희대와 신일고에서 강연했고 30일에는 인하대를 찾아 ‘한국의 뿌리에서 열린 재미 한인 디아스포라의 열매’라는 주제로 한국 대학생들을 만난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한 질문은 미국에서 한국 아줌마가 어떻게 정치인이 될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어요. 그때마다 전 이렇게 답했죠. 안 될 게 뭐 있어(Why not)?”

류 의원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브루나이로 이민을 갔다.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2년 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도전정신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를 악물고 공부해 워싱턴대 미생물학과와 같은 대학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수료했고 회계학을 전공한 남편 류창명 씨와 보험회사를 운영하며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미국 사회는 아시아인 부부를 고운 눈길로 봐주지 않았다.

“당시 공무원들이 소수민족에게 굉장히 비협조적이었습니다. 한인 건물주들에게 공사를 이유로 건물을 팔고 나가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죠. 한인과 소수민족을 대표해 미국 사회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습니다.”

그는 2004년 47세의 나이로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낙선했다. 세 아이를 키우던 평범한 아줌마는 늦깎이 정치인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류 의원은 4년 뒤 워싱턴주 쇼어라인시장에 당선됐고 2010년 주 하원의원, 2012년에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재선에 성공했다. 영주권자 이상에게만 발급하던 운전면허를 이민자에게 확대하는 법안을 비롯해 교통 건설 경제 분야에서 차별화된 정책을 내놨다. “다른 여성 정치인처럼 복지 건강 교육 인권문제에 주력하지 않았어요. 자기가 잘하는 분야를 파고드는 게 중요합니다.”

올해 3선에 도전하는 그는 당선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했다. “위안부 문제만 하더라도 한인이 나서면 공격을 받습니다. 조용한 힘이 필요한 분야죠. 거창한 공약 대신에 약자들을 위한 물밑 지원에 힘쓸 계획입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