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으름밤나방 애벌레 (2)큰광대노린재 (3)태극나방. 상상의 숲 제공
(1)으름밤나방 애벌레 (2)큰광대노린재 (3)태극나방. 상상의 숲 제공
한여름이면 숲 속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풀잠자리는 곤충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미모’를 갖고 있다. 반투명의 초록빛 날개에 홀려 풀잠자리를 쫓아간 기억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풀잠자리 애벌레의 생김새는 딴판이다. 잎사귀, 나무 부스러기, 자신이 먹어치운 동물의 시체 등을 뒤집어쓰고 다닌다. 얼핏 보면 쓰레기로 보인다. 성체는 독을 갖고 있지만 별다른 무기가 없는 애벌레는 자신을 쓰레기로 위장해 포식자들의 눈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책마을] 살아남기 위하여…오늘도 똥을 뒤집어 쓴다
이처럼 곤충들은 저마다 상황에 맞는 옷을 입고 산다. 수수한 보호색도 있고 화려해 눈에 띄는 색도 있다. 멋을 내기 위한 옷이 아니라 생존용이다. 살기 위한 절박한 선택인 셈이다. 《곤충의 빨간 옷》은 국내에 서식하는 곤충들의 이런 방어 전략을 다루고 있다.

곤충이 포식자를 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자신의 날개와 발로 재빠르게 도망치는 것이다. 바퀴는 꼬리돌기에 난 감각털로 포식자를 감지하고는 빠르게 구석으로 몸을 숨긴다. 메뚜기 역시 빠르게 풀숲으로 뛰어 들어간다. 자신의 몸을 방어무기로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흑바구미나 도깨비거저리처럼 몸이 딱딱하고 삐죽삐죽한 돌기나 뾰족한 가시를 달고 있으면 포식자가 잡아먹기 힘들다.

다른 무기는 보호색이다. 새똥하늘소, 배자바구미, 아기 금빛갈고리나방 등은 몸 색깔을 얼룩덜룩한 새똥 색깔로 ‘변장’해 포식자의 눈을 교묘히 피한다. 자신이 싼 똥을 재활용하는 곤충도 있다. 곰보가슴벼룩잎벌레 애벌레, 들메나무외발톱바구미 애벌레 등은 자신이 싼 똥을 직접 등에 짊어지고 다닌다. 자신의 몸을 주위 환경에 숨기는 ‘위장’도 있다. 잎 위에서 먹고자는 섬서구메뚜기, 자벌레 등은 초록색을 띠고 땅에서 사는 귀뚜라미, 먼지벌레 등은 검은색을 띤다.

독으로 포식자를 쫓아내는 곤충도 있다. 딱정벌레류는 몸속에서 하이드로퀴논, 알테이드, 페놀 등의 독 물질을 분비한다. 개미도 개미산이라 불리는 포름산을 갖고 있다. 가뢰는 맹독성 물질인 칸타리딘을 품고 다니며 위험하면 다리의 관절, 몸과 다리가 연결된 마디의 막에서 노란 피를 흘린다.

색깔이나 무늬 패턴으로 이런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한다.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처럼 선명한 색으로 ‘내 몸에 독이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 새빨간 홍반디에도 독 물질이 있고 알록달록 화려한 큰광대노린재도 독을 갖고 있다. 태극나방이나 참나무산누에나방은 날개에 눈알 무늬를 그려 넣어 포식자를 움찔하게 만들기도 한다.

딱딱한 껍질도 없고 강력한 독도 없지만 위협적인 척 ‘블러핑’을 하기도 한다. 경고색을 가진 곤충을 흉내 내 ‘내 몸이 독이 있어’라고 거짓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호랑하늘소는 곤충 가운데 가장 위협적인 말벌의 생김새와 아주 흡사하다. 개미붙이는 독 물질과 독침을 가진 개미벌과 비슷하게 생겼고 행동도 닮았다. 홍날개, 대유동방아벌레, 소주홍하늘소 등은 독을 가진 홍반디를 빼닮았다.

책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곤충 40여종을 소재로 삼고 있다. 450여컷에 이르는 곤충들의 사진을 첨부해 현장감을 살렸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