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1920년 5월 폴란드 남부 한 마을에서 삼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폴란드 왕국의 수도였던 크라쿠프의 야기엘론스키대 재직시 운동, 연극 등에 다양한 소질을 뽐냈고 수많은 언어에 능통했다. 1939년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대학이 문을 닫으면서 종전 때까지 은신하며 신학 연구에 몰두했다. 1958년 주교품을 받을 때까지 크라쿠프 교구에서 병자 등을 돌봤다.
교황 즉위 후 요한 바오로 2세는 조국 폴란드에서 열정적인 연설로 공산주의 해방을 앞당겼다. 이는 동유럽에 도미노처럼 번져가 결국 냉전 시대의 종식으로 이어졌다. 1981년 흉탄에 맞아 중태에 빠졌으나 회복한 뒤 암살자가 재소 중인 교도소를 직접 찾아가 용서했다.
1982년 포클랜드전쟁 등 수많은 전쟁 당사국을 찾아가 평화를 호소했다. 1984년 5월3일 한국 교회 창립 200년을 맞아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2000년 3월에는 이단 심문, 십자군 원정 등 교회가 과거 저지른 잘못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다만 동성애, 낙태 등 사안에는 “자연법칙을 어기는 행위”라며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1996년 이후부터 파킨슨병 등 많은 질환에 시달렸다. 2005년 3월 말 혼수상태에 빠진 후 4월2일 선종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