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선 씨의 ‘보위(단종과 수양)’.
서용선 씨의 ‘보위(단종과 수양)’.
역사서 속의 기록은 과연 사실일까. 그것은 어디까지 진실을 말해주는 것일까. 혹시 힘의 논리로 재단된 지배자의 역사는 아닐까. 정권 쟁취와 그 뒤에 도사린 인간의 탐욕, 반인륜적 행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서양화가 서용선 씨(63)는 작가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역사의 가면 뒤에 숨은 민낯을 재구성해낸다.

28년 동안 단종 이야기에 매달리고 있는 서씨가 파주 헤이리아트센터 화이트블럭에서 지난 2일부터 개인전 ‘역사적 상상-서용선의 단종실록전’을 열고 있다. 역사적 사건과 도시인의 삶이라는 두 가지 테마에 몰입해온 그는 1986년부터 계유정난(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사건)과 단종 복위운동을 둘러싼 사건 및 인물을 그려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안평대군에게 초점을 맞춘 작품들과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곳을 직접 답사하며 그린 역사풍경화를 선보인다.

그의 역사화는 뚜렷한 교훈이나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를 지속적으로 상상하고 사유하는 과정을 기록한다. 작가는 기록 뒤에 감춰진 또 다른 진실의 가능성을 환기할 뿐이다. 관객은 그의 작품을 보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역사가 놓친 진실의 틈새를 들여다보며 오늘의 우리를 반추하게 된다.

‘처형장 가는 길’ ‘백성들의 생각 정순왕후’ ‘보위(단종과 수양)’에 등장하는 인물의 분노와 체념의 표정은 역사적 기록 뒤에 가려진 진실에 대한 암시다. 원색의 강렬한 색채는 억울하게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해야만 했던 이들의 분출하는 분노처럼 보인다. 단종이 숨을 거둔 영월의 청령포, 매월당 김시습이 단종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제를 지낸 동학사 경내의 숙모전 등 역사풍경화도 함께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최근 갤러리에서 미술관으로 재개관한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의 특별기획전이다. 전시와 연계해 작은 연극 ‘세조 애걸’(김남건 연출), 이번 전시를 빛과 소리로 재해석한 박동레코드의 미디어퍼포먼스도 열린다. 김형숙 서울대 미대 교수의 《기억하는 드로잉:서용선 1965-1982》도 전시에 맞춰 출간됐다. 7월27일까지. (031)992-4400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