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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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희생하다 홀연히 가신
고결하고 아름다운 나의 거울
이병석 < 국회 부의장 lbs@assembly.go.kr >
고결하고 아름다운 나의 거울
이병석 < 국회 부의장 lbs@assembly.go.kr >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한겨울 차가운 수돗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시인 심순덕이 노래하는 ‘어머니’다.
어버이날 아침 이 시를 되뇌어본다. 가슴이 먹먹하다. 눈물이 울컥 쏟아질 것 같다. 나의 어머니도 그랬다. 평생을 자식 잘되기만을 소원하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다. 자식을 위해 끝없이 퍼주고 내 곁을 떠나셨다.
어린 시절, 나에게 가난은 정말 모진 쓰라림과 고통이었다.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된 어머니는 포항 죽도시장에서 좌판을 펴놓고 장사를 시작하셨다. 갈수록 생계가 어려워지자 어머니는 멸치젓 동이를 머리에 이고 장이 서지 않는 경북 산간마을로 젓갈을 팔러 다니셨다.
우리 식구에겐 집이 따로 없었다. 여기저기 떠돌다 장사가 될 만한 마을이면 방 한 칸을 얻어 며칠 머물다가 또 다른 곳으로 떠나곤 했다. 그 와중에 어린 누이와 나는 곧잘 젓갈 두어 됫박과 함께 따로 떨어져 낯선 집에 맡겨지기도 했다. 딴 집으로 홀로 맡겨졌던 내 누이는 굶주림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한 채 ‘엄마’만 부르다가 저 세상으로 먼저 갔다. 강산이 다섯 번도 더 변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겨우 네 해를 살다 가버린 내 누이를 잊을 수가 없다.
나의 어머니는 그렇게 한 자식을 가슴에 묻었다. 그리고 남은 자식을 위해 여전히 고달픈 삶을 지탱하셨다. 어느 날인가. 어머니는 감 장사를 시작하셨다. 생감을 홍시로 만들어 장날에 먼저 내다 팔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셨던 어머니는, 조그만 방 한 칸 빌려 익지 않은 생감을 사서 방바닥에 돌무덤처럼 쌓고 그 위에 솜이불을 덮었다. 그러나 감은 시커먼 숯덩이처럼 곪아터져 식초를 부어놓은 듯 방바닥을 적셨다. 망연자실하신 어머니는 나를 부둥켜안고 한스러운 통곡을 하셨다.
2002년, 어머니가 고단한 육신을 접고 홀연히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머니는 국회의원인 아들도 모르게 기거하시던 집마저 포항시에 기증하고, 아무도 모르게 돌봐오시던 세 분의 불구 노인에게 마지막 용돈을 전달해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나의 어머니는 가난한 삶 속에서도 ‘사랑’과 ‘무소유’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주셨다. 그렇듯 고결하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모습은 오늘도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 내 앞에 서 계신다.
이병석 < 국회 부의장 lbs@assembly.go.kr >
어버이날 아침 이 시를 되뇌어본다. 가슴이 먹먹하다. 눈물이 울컥 쏟아질 것 같다. 나의 어머니도 그랬다. 평생을 자식 잘되기만을 소원하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다. 자식을 위해 끝없이 퍼주고 내 곁을 떠나셨다.
어린 시절, 나에게 가난은 정말 모진 쓰라림과 고통이었다.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된 어머니는 포항 죽도시장에서 좌판을 펴놓고 장사를 시작하셨다. 갈수록 생계가 어려워지자 어머니는 멸치젓 동이를 머리에 이고 장이 서지 않는 경북 산간마을로 젓갈을 팔러 다니셨다.
우리 식구에겐 집이 따로 없었다. 여기저기 떠돌다 장사가 될 만한 마을이면 방 한 칸을 얻어 며칠 머물다가 또 다른 곳으로 떠나곤 했다. 그 와중에 어린 누이와 나는 곧잘 젓갈 두어 됫박과 함께 따로 떨어져 낯선 집에 맡겨지기도 했다. 딴 집으로 홀로 맡겨졌던 내 누이는 굶주림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한 채 ‘엄마’만 부르다가 저 세상으로 먼저 갔다. 강산이 다섯 번도 더 변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겨우 네 해를 살다 가버린 내 누이를 잊을 수가 없다.
나의 어머니는 그렇게 한 자식을 가슴에 묻었다. 그리고 남은 자식을 위해 여전히 고달픈 삶을 지탱하셨다. 어느 날인가. 어머니는 감 장사를 시작하셨다. 생감을 홍시로 만들어 장날에 먼저 내다 팔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셨던 어머니는, 조그만 방 한 칸 빌려 익지 않은 생감을 사서 방바닥에 돌무덤처럼 쌓고 그 위에 솜이불을 덮었다. 그러나 감은 시커먼 숯덩이처럼 곪아터져 식초를 부어놓은 듯 방바닥을 적셨다. 망연자실하신 어머니는 나를 부둥켜안고 한스러운 통곡을 하셨다.
2002년, 어머니가 고단한 육신을 접고 홀연히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머니는 국회의원인 아들도 모르게 기거하시던 집마저 포항시에 기증하고, 아무도 모르게 돌봐오시던 세 분의 불구 노인에게 마지막 용돈을 전달해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나의 어머니는 가난한 삶 속에서도 ‘사랑’과 ‘무소유’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주셨다. 그렇듯 고결하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모습은 오늘도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 내 앞에 서 계신다.
이병석 < 국회 부의장 lbs@assembly.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