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의식 기저에는 샤머니즘적 특성이 깊게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불교·기독교 같은 외래종교가 들어와도 우리 땅에선 샤머니즘화되는 경향도 있다. 이런 샤머니즘적 감성은 월드컵 거리응원처럼 신명나는 에너지로 승화될 수 있지만, 광우병 촛불시위처럼 파괴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한국 사회는 또한 사이비종교가 넘쳐난다. 한국만큼 ‘재림예수’가 많이 출현하는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 정신은 아직 미성숙한데 몸은 훌쩍 커버린 철부지 사춘기 소년과 같은 공허한 정신세계를 채우기 위해 사이비종교와 샤머니즘의 부정적 요소가 결합, 사회 전반에 싸구려 푸닥거리가 만연할 위험성이 상존하는 것이다.

세월호의 비극적 사건은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준다. 이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일부 현상은 일부 사이비종교집단의 싸구려 푸닥거리와 다를 바 없는 듯하다. 어느 문명국가의 큰 사고라고 우리처럼 온갖 괴담과 선동이 난무할까? 가두시위에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앞세우는 행동이 버젓이 행해지는 사회를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번에도 유모차 시위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선진 국가는 국가적 재난 앞에선 일단 단결해 수습을 하고 나서 반성과 개선이 이뤄진다. 우리 사회는 거꾸로 마치 ‘정권타도’의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여기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세월호 사건 보도를 24시간 스포츠 중계방송하듯 한 방송을 보자. 재난보도 방송에 관한 모든 원칙을 어긴 언론들의 선정성을 넘어선 선동적 태도는 사이비종교집단 수준이 아니었나? 재난보도준칙은 왜 존재하는가. 선동적 괴담들을 버젓이 방송하거나 ‘다이빙 벨’이란 기구가 만능이라도 되는 듯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를 보도해서 사태를 호도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방송언론에는 철퇴가 내려져야 한다. 재난 때마다 나타나 방송에서 요설을 휘두르며 구세주처럼 행동하는 어느 인사를 보면 선무당이 연상되지 않는가.

세월호 참사와 구조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고치기 위해 ‘국가개조’를 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국가개조라는 단어는 인위적인 사회공학적 뉘앙스가 있기에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의 대오각성과 수술이 절실하기에 이 정도의 의지표명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요즘 많이 얘기되는 정부·공공부문의 대대적 쇄신이 요구된다. 개조수준의 전방위적 정부 시스템의 혁신도 필요하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현 정부의 원래 슬로건이 여러 이유로 인해 잘 추진되지 않았는데, 지금이야말로 정부 출범 후 실기했거나 저조했던 개혁을 대대적으로 실행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가 바로 우리 사회에 숨어있던 ‘비정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았는가.

아울러 정치·사회부문의 각성과 개선도 필요하다. 정치권은 정치투쟁 목적으로 그동안 안전·민생법안들을 등한시하며 통과시키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성이 왜 없는가. 또한 각종 명목의 복지, 보상금, 지원금 확대가 적정한 수준이었는지도 재검토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무상급식 등에 예산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학생들의 안전을 위한 예산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 정신문화의 취약성을 어떻게 타파해 시민사회를 성숙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뒤따라야 한다. 국가적 재난을 정치투쟁의 기회이자 수단 정도로 악용하려는 후진적 정신 상태를 극복해야 한다. 슬픔을 절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노를 조장하는 우리 사회의 약점을 이용하는 정치악습부터 타파해야 한다. 언제까지 사이비종교집단의 저질 푸닥거리와 다름없는 행태를 반복하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강규형 <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현대사 gkahng@cho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