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맛찾사
한국 경제성장사와 함께해온 명동에는 맛집도 많았다. 곰탕의 전설 ‘하동관’의 단골은 주로 기업인이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등이 자주 들렀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이 집부터 찾았다. 다들 뜨거운 곰탕 한 그릇의 힘으로 가난과 전쟁의 역사 위에서 경제 기적을 일궈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명동돈가스’를 유난히 좋아했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을지로역 근처 일식집 ‘선우’를 자주 찾았다. 을지로 ‘우리집 순두부’는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단골집이다. 내자동 쪽의 남도음식점 ‘신안촌’은 최현만 미래에셋 수석부회장의 사랑방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곳을 자주 찾아 무안에서 직송한 낙지꾸리 별미를 즐겼다.

DJ는 워낙 대식가여서 야당 총재 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영수회담 때 칼국수를 먹고 당사로 돌아와 근처 식당에서 복요리를 또 먹을 정도였다. 을지로 곱창집 양미옥의 단골이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경상도 칼국수집인 소호정, 혜화동의 칼국수집을 좋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효자동 토속촌 삼계탕을 즐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밥, 만두, 국수 등 가리는 것 없이 뭐든 싹싹 비웠다.

유명 인사들뿐만이 아니다. ‘밥심’으로 사는 한국인에게 맛집은 단순한 식당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글로벌리서치 조사결과 한국인의 42%는 여행지를 결정할 때도 음식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태평양국가들의 평균치(36%)보다 훨씬 높다. ‘전체 휴가비 중 최대 절반을 먹거리에 지출한다’(47%)고도 한다.

직장에서도 점심 시간만 되면 “오늘 뭐 먹지?”를 연발한다. 몇 년 전 창원상공회의소가 기업인과 근로자들을 위해 만든 ‘맛집 100선-뭐무꼬?’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회사별 식도락 모임인 ‘맛찾사’(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전국을 누빈다. 근로복지공단의 사회봉사 동아리 이름 또한 ‘맛찾사(맛을 찾아가는 사랑나눔실천 모임)’다.

방송에 나온 얼치기 맛집에 식상한 사람들은 더 후미진 골목을 파고든다. ‘우리집은 KBS, MBC, SBS, 종편 맛집 프로그램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식당입니다’라는 풍자 문구를 붙여놓은 식당도 있다. 전국의 빵집을 순례하는 커플도 흔하다. 카드 사용 실적을 보니 서울 사람들이 지방에서 쓴 음식값이 한 해 3조원에 이른다. 정말 대단한 먹성에 대단한 열정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토요일이다. 이번 주말 우린 또 뭘 먹으러 나가볼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