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슈퍼 리치가 지목하는 차기 유망국 '중심축 국가'
G7(group of 7·미국 일본 등 선진 7개국 모임) 등 한동안 세계 경제를 주도했던 ‘G-something’ 체제가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6년 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글로벌 리더십 유지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중국의 경우 경제 위상은 높아졌지만 글로벌 리더십을 책임질 외교 역량이나 소프트 파워, 군사력 측면에서 미국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지배국 또는 중심국이 없는 ‘그룹 제로(G0)’ 시대에는 각국 간 경제관계가 세계 공통의 이익보다는 자국 이익을 우선 고려하는 식으로 흐르게 된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미국, 일본, 중국 등 경제 대국들이 자국 통화 약세를 통해 수출과 경기 부양에 나서면서 환율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게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 경제경찰기구가 해결사로 나서기도 힘든 상황이다. 국제적인 위상이 높지 않은 데다 힘 있는 국가가 합의사항을 위반할 경우 제재하더라도 지키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들 기구의 ‘축소론’과 ‘역할 재조정론’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슈퍼 리치가 지목하는 차기 유망국 '중심축 국가'
G0 시대가 새로운 체제로 가기 전의 과도기적 현상인지, 아니면 그대로 굳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앞으로 세계 경제질서는 ①미국과 중국이 상호 공존하는 ‘G2’ ②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냉전 2.0’ ③지역별로 분화하는 ‘분열’ ④모두 조화하는 ‘G20’ ⑤무정부 상태인 ‘서브 제로(sub zero)’ 등 다섯 가지 시나리오로 상정해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예측기관은 이 중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로 ③번을 꼽는다. 그 다음은 ①번이다. 각국이 자기 나라 문제나 지역문제 해결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움직임은 이미 감지되고 있다. 이 경우 세계 경제는 종전의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예측하기도 어려운 ‘새로운 비정상(new abnormal)’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2차대전 이후 세계 경제활동을 주도해온 ‘스탠더드형’ 질서가 새로운 비정상 시대의 ‘젤리형’ 질서와 공존하는 시대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를 비롯한 대다수 예측기관이 “모든 것은 변한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마하 경영’에 나선 것도 이런 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할 수 있다.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향후 세계 경제와 국제 금융질서를 특징짓는 ‘새로운 비정상’에 대해 “과거의 글로벌 스탠더드와 지배구조 한계에서 출발한다”고 진단했다. 기존 글로벌 스탠더드와 지배구조 흐름을 주도했던 미국과 유럽에서 각각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사태와 유럽발 재정위기가 발생했다는 이유에서다.

새로운 비정상 시대로 접어들면서 모든 경제활동의 이론적 근거인 경제학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고 있다. 주류 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 간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이 대표적인 예다. 학계에서는 이를 ‘경제학의 혼돈(chaos of economics)’으로 부른다. 심리학 생물학 등을 접목시킨 행동경제학이 떠오르는 것도 새로운 흐름이다.

지배국이 없는 G0 시대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일반화의 함정’이다. 인구와 부존자원이 많다는 공통점을 뽑아내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4개국을 ‘브릭스(BRICs)’로 한데 묶을 경우 이제는 의미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를 묶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표현했던 것 역시 마찬가지다.

브릭스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은 세계적으로 기업 해외 진출 및 글로벌 투자 관점에서 유행해 이들 용어를 바탕으로 한 금융상품이 쏟아져 나왔지만 나라마다 독자적인 길을 걷는 경향이 뚜렷하다 보니 더 이상 하나로 묶기 어려워진 것이 요즘 이들 경제의 모습이다.

세계시장은 이제 브릭스를 대체할 새로운 국가들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이머징마켓 진입을 목전에 둔 성장 잠재력이 큰 나라들이 주요 관찰 대상이다. 예측기관들이 주목하는 것은 해당 국가가 ‘중심축 국가(pivot-state)’가 될 만한 잠재력을 가졌느냐 하는 것이다. 기존의 중심국과 구별되는 ‘중심축 국가’란 특정 국가에 모든 걸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국가와 서로 이익이 될 수 있는 관계를 독자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국가를 말한다.

현 시점에서 이런 잠재력을 갖춘 국가와 지역으로는 베트남, 나이지리아, 두바이, 인도네시아, 옛 실크로드 주변국이 꼽히고 있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을 비롯한 세계적인 투자자들은 벌써부터 이런 중심축 국가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G0 시대를 맞아 앞으로 이들 국가에 진출하는 기업도 늘어나고, 이들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금융상품도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