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문 화이트블럭 대표와 차명희 화백 부부가 경기 파주 헤이리에 있는 차 화백 작업실에서 다정하게 웃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이수문 화이트블럭 대표와 차명희 화백 부부가 경기 파주 헤이리에 있는 차 화백 작업실에서 다정하게 웃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이수문 화이트블럭 대표와 차명희 화백은 환갑이 될 때까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부부다. 부엌용 레인지후드 생산업체 ‘하츠’ 창업자인 이 대표는 “하루 일과가 출근에서 시작해 퇴근으로 끝났다”고 말할 정도로 일에만 몰두했다. 반면 차 화백은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화가의 삶을 살았다.

그러던 두 사람이 2011년 한 공간에서 만났다. 이 대표가 경기 파주 헤이리에 갤러리 ‘화이트블럭’을 지은 뒤부터다. “60세가 되면 은퇴하겠다”고 공언해온 이 대표가 미술 사업을 시작하면서 두 사람은 종일 얼굴을 맞대야 하는 관계로 변했다.

주변 사람들은 “이 대표가 은퇴한 뒤 부인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달 30일 인터뷰를 하게 된 것도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알콩달콩’ 살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두 사람으로부터 ‘이모작 인생을 이뤄가는 명사 부부의 얘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단독’으로 결행한 갤러리사업

인터뷰는 갤러리 화
파주 헤이리의 ‘화이트블럭 갤러리’
파주 헤이리의 ‘화이트블럭 갤러리’
이트블럭에서 약 100m 거리에 있는 별도 건물에 들어선 차 화백의 작업실에서 이뤄졌다. 잉꼬 같은 노부부의 모습을 상상한 기자의 지레짐작은 사진 촬영이 시작된 첫 장면부터 깨졌다. 부부는 손을 잡는 것조차 쑥스러워했다. 이 대표는 “나는 건물주이고 저 사람은 세입자예요”라고 소개했다.

차 화백도 약간은 썰렁한 기운을 내보였다. “갤러리는 사양산업이에요. (남편이) 이걸 할 줄은 몰랐어요. 갤러리를 한다고 했을 때도 이 정도 규모로 지을 줄은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갤러리 설립이 화가인 부인의 뜻을 따랐다든가, 구체적으로 두 사람이 논의해 결정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작가들이 보는 좋은 갤러리는 그림을 잘 파는 갤러리지, 규모가 크고 건물이 멋있는 갤러리가 아닙니다. 건축을 전공한 남편의 집에 대한 욕심이 앞선 것이지요.” 각종 건축상을 탄 대형 갤러리 화이트블럭에 대한 타박이었다.

이 대표에게 갤러리를 연 이유를 물었다. “퇴직 후 빈둥거리다 좀이 쑤셔 이 일, 저 일 찾아봤어요. 연극 쪽을 생각해봤는데 거기는 바닥이 좁아 ‘누구는 도와주고 누구는 안 도와준다’는 말이 나올까봐 미술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었지요.”

이 대표는 ‘큰 집’을 지었다는 부인의 말을 의식한 듯 한마디 덧붙였다. “갤러리를 지으려면 제대로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술관처럼 그럴듯하게…. 일을 저지르려면 제대로 저질러야지.”

○서로에 대한 존중

화이트블럭 갤러리는 지난해 5억원가량 적자를 냈다. 이 대표는 “하드웨어를 제대로 갖춰 놓고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야 사업이 된다”고 말했다. 5억원 적자는 투자일 뿐이라는 얘기다. 후발 주자이기 때문에 차별화 전략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예술가들은 전후좌우가 없고, 장단기 목표를 세울 줄 몰라요.”

차 화백도 지지 않았다. “그런 (전략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예술을 택하지 않습니다. 기획한 대로 마감하고 전시회까지 끝내는 작가도 있긴 하지만 이쪽 분야에서는 그런 사람을 ‘웃긴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부부는 맨날 싸우지 않을까. 차 화백은 “갤러리 사업 적자는 내가 신경쓸 분야가 아니므로 얼마가 되는지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갤러리는 남편의 사업일 뿐이기 때문에 서로 싸울 일이 없다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넘지 않는 선’이 느껴졌다.

이 대표도 비슷한 말을 했다. “제일 좋은 것은 (부부가) 합의해 같은 쪽을 보고 살아가는 것이지만, 삶의 과정이 다른데 어느 날 갑자기 하나처럼 될 수는 없지요. 차선책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서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방법으로 서로에게 무관심해지는 것도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대표는 어떻게 ‘화목한 가정’을 이뤘는지 기자가 되물었다. “부부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모델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왜 저렇게 못살까 하고 원망하는 순간 두 사람의 관계는 더 나빠지게 돼 있습니다.”

차 화백이 거들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잔소리 듣기 싫어하는 남편에게 잔소리하지 않고, 간섭받는 것을 싫어하는 아들이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지에 대해서도 저는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기업인과 화가, 아들로 이뤄진 가족은 그렇게 서로의 일을 존중해가며 간섭하지 않고 가정을 꾸려왔다는 얘기다.

○노후 대비는 네트워크·취미·돈

기업인으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은퇴한 남편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해 차 화백에게 물었다. “갑자기 가정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어요. 자기가 마음에 안드는 것이 있으면 나를 회사 여직원처럼 생각하고 말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것 같아 황당했습니다.”

차 화백이 택한 길은 ‘절충’이었다. “적당히 얘기를 들어주면서 내가 살아온 길을 그대로 가는 거지요.”

이 대표도 지지 않았다. “나도 은퇴 후 꿋꿋하게 잘살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서로 의무를 지키면서 살면 됩니다.” 이 대표는 스스로 가장, 차 화백을 부가장, 아들을 가원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 위계질서를 지키기 위해 “돈 지출권만큼은 아직도 내가 지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은퇴 후에도 즐겁게 살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얘기했다. “현직에 있을 때 인간관계를 잘 맺어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난 척하던 친구들은 은퇴하면 가장 외롭게 살아요. 사업과 관계가 없는 취미, 자신이 평생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친구들이 모임에 안 나오기 시작하는 때는 은퇴 후 2년 정도 지났을 때입니다. 돈이 떨어질 때죠. 여유 자금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생은 기획상품이 아니다”

차 화백에게 ‘지금의 삶이 연애와 결혼 때 꿈꾸던 미래 모습과 닮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인생은 기획상품이 아닙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작품에 따라 다르지만 작가 자신조차 뭘 그리는지 모를 때 작품이 제일 잘됩니다. 안갯속에서 어렴풋한 무언가를 상상하면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좋은 작품이 나옵니다.”

이 대표가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라고 맞장구를 쳤다. 이 대표는 “인생이든 기업이든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며 “원칙을 세워 뚜벅뚜벅 가다 보면 돈이나 성공은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하츠를 설립한 지 20년 만에 연매출 700억원, 직원 260여명을 둔 회사로 키워냈다. 비결을 묻자 그는 “돌이켜보면 중학생 때부터 연극을 했던 것이 기업 경영에 많은 도움이 됐다”며 “작품의 극적인 요소와 등장 인물에 대한 심층 분석을 통해 변화와 도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관습을 그대로 따라 하다 보면 잘 해봐야 ‘영원한 3등’에 머물게 된다”며 “기존의 것들을 답습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살다 보니 지금에 이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이 대표는 “2018년이면 내 나이가 일흔”이라며 “중산층이 살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미술시장을 활성화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 이수문-차명희 부부

​이수문 화이트블럭 대표와 차명희 화백은 1948년생 동갑내기 부부다. 두 사람은 서울대 재학 시절 동아리에서 만나 1975년 결혼했다.

이 대표는 전북 완주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1972년 보르네오를 시작으로 한샘과 현대종합목재에서 16년간 근무하다 1988년 부엌용 레인지후드 제조회사인 하츠를 설립했다. 20년간 기업 최고경영자(CEO)로 살다가 만 60세 때인 2008년,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겠다”며 하츠를 매각하고 2011년 경기 파주 헤이리에 갤러리를 차렸다.

차 화백은 황해도 연안 출신으로 숙명여고, 서울대 미대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나왔다. 동양화를 전공한 차 화백은 1984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30여년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 선 긋기와 회색의 거친 붓질이 특징이다. 차 화백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대영박물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현재 국내 대표 비영리 대안공간 ‘사루비아 다방’의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용준/추가영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