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못하는 지방의회 의원들] 입법·정책감시 뒷전…공천권 쥔 지역구 의원 행사 챙기기 바빠
1991년 민선 지방의회가 출범한 지 20여년이 넘었지만 지방의원들의 구태의연한 행태는 여전하다. 상당수 지방의원이 공천과 이권 챙기기에만 눈이 멀어 본연의 업무인 입법 및 정책 감시기능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국민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례안 발의 연평균 1인1건 그쳐

한국경제신문이 12일 서울시의원 114명의 8대 지방의회 임기 동안 본회의 시정질문 현황을 전수 조사한 결과 시정질문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시의원은 전체의 32.5%인 37명에 달했다. 정당별로 보면 현직 기준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73명 중 23명, 새누리당은 26명 중 10명, 교육의원(무소속)은 6명 중 4명이 여기에 해당됐다.

지난해 11월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제250회 정례회 본회의 시정질문이 진행되는 가운데 의원석 대부분이 비어 있다. 한경DB
지난해 11월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제250회 정례회 본회의 시정질문이 진행되는 가운데 의원석 대부분이 비어 있다. 한경DB
김용석 새누리당 시의원(서초구)이 총 9회로 시정질문을 가장 많이 했다. 이어 △이경애 새정치연합 시의원(성북구) 8회 △김기덕 새정치연합 시의원(마포구) 7회 △곽재웅 새정치연합 시의원(성동구) 7회 등의 순이었다.

임기 동안 시정질문을 한 차례도 하지 않은 한 시의원은 “후배 의원들에게 시정질문을 할 기회를 양보한 것”이라며 “의정활동에 소홀했던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반면 시정질문을 많이 한 A의원은 “지방의원으로서 서울시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책을 이끌어내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시정질문”이라고 강조했다.

조례 제·개정안을 전수 조사한 결과 8대 지방의회 임기가 시작된 2010년 7월부터 현재까지 서울시의회에 접수된 조례 재·개정안 1000건 중 시의원들이 발의한 의안은 617건이었다. 국회는 법률을 제·개정하고, 각 지방의회는 이 법률에 근거해 해당 지역에서 영향을 미치는 자치법규인 조례를 만든다.

서울시의원들은 한 명당 연평균 1.3건의 조례안을 발의했다. 전체 시의원 중 연평균 1건 미만(총 4건 미만)의 조례안을 발의한 의원은 41명에 달했다. 이 중 정당별로는 새누리당이 26명 중 18명, 새정치연합은 73명 중 18명, 교육의원(무소속)은 6명 중 5명이 여기에 해당됐다. 4년 임기 동안 조례를 단 한 건도 발의하지 않은 의원은 총 6명이었다.

“본회의 열려도 국회의원 행사 우선”

대부분의 시의원들은 “의정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중앙당의 공천을 받거나 재선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한 시의원은 “의원 개개인들의 자질 문제도 있겠지만 지역구 국회의원이 사실상 모든 공천권을 쥐고 있어 의원들 행사 따라다니기도 바쁘다”며 “본회의가 있더라도 의원들 행사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는 광역의회에서 시·군·구 등의 기초의회로 갈수록 더욱 심각하다. 한 구청 관계자는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행동대장 역할을 하는 구의원들이 적지 않다”며 “그럼에도 서울 자치구 평균으로 연간 70억~80억원을 구의회 경비로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당의 일방적인 공천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자 여야 정치권은 올초 이번 6·4 지방선거에 시민 투표로 결정되는 ‘상향식 공천’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전국 지방자치단체 곳곳의 경선 과정에서 각 정당들이 후보자 경선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내부 협의나 ‘내 사람 끼워넣기’식의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구청장 후보 경선 탈락자는 탈당 후 시의원 선거에, 시의원 후보 경선 탈락자는 탈당 후 구의원 선거 출마 의사를 밝히는 등 경선 불복도 잇따르고 있다.

최호택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천 잡음 등 지방선거를 둘러싼 파행이 계속되면 앞으로 지방의회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정치권이 지방의회 선거방식을 전면 개편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