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재산, 스스로가 지킨다"…정부, 세밀한 계획으로 뒷받침
교육·훈련으로 대응역량 강화…재난교훈 반영해 제도 개선
재난전문기관 없지만 유사시 국가 전체가 나서는 형태


일본의 방재(防災) 시스템은 지진·화산·풍수해 등 자연재해의 피해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변화를 거듭했다.

빈발하는 재해 탓에 생명과 재산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이것이 일본의 방재 시스템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는 특유의 세밀한 계획으로 이를 뒷받침하며 국민이 안전 의식을 키우도록 끊임없이 교육·독려해 왔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방재는 일본에서 매우 익숙한 화두가 됐으며 일반인도 이것이 구호가 아니라 유사시 생존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잦은 자연재해에 대응하며 방재계획 마련 = 1959년 아이치(愛知)·미에(三重)·기후(岐阜)현 일대를 강타한 이세(伊勢)만 태풍이 5천 명 가까운 사망·실종자를 낸 것을 계기로 국가와 지방공공기관·단체가 협력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자는 취지로 1961년 재해대책기본법을 제정, 재난·방재 대응의 골격을 마련했다.

1963년 이 법에 기초를 두고 방재기본계획을 책정해 올해 1월 17일까지 13차례에 걸쳐 전면·부분 개정을 단행하며 재해·재난 대응 시스템을 구축했다.

방재 계획은 모든 재해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 외에 지진, 쓰나미, 풍수해, 화산폭발, 폭설, 해상재해, 항공재해, 철도재해, 도로재해, 원자력재해, 위험물 재해, 대규모 화재, 산림화재 등 13가지 각기 다른 재해 대책을 제시한다.

이들 계획은 통상 예방, 긴급대책, 복구 등으로 나눠 대응 절차와 각 기관의 역할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국가와 공공기관·단체는 주민에게 지진에 관한 교육을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교육 내용은 식량·음료수·구급상자·전등·라디오 등 생존에 필요한 물건의 준비나 부상 방지책, 피난통로 확보 등을 포함하며 심지어 반려동물을 데리고 피난한 경우에 필요한 준비까지 거론하고 있다.

또 지진으로 주요 통신 수단이 작동하지 않을 때에 대비해 가족이 서로 안부를 확인할 방법을 미리 결정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선박 사고 등 해상 재난에 관해서는 국가와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 도도부현과 시초손(市町村·기초자치단체) 등이 미리 연락 순서와 조정 창구 등을 정해 놓도록 하고 있다.

기초자치단체는 주변 기초자치단체에 재난이 발생할 때 지원 체계가 작동하도록 서로 협정을 맺고 공공단체는 대규모 재해로 인근 지역이 모두 위기에 처할 때에 대비해 원거리에 소재하는 단체와도 협력 관계를 구축하라고 규정한다.

방재기본계획이 국가 차원의 총론에 해당함에도 본문만 640쪽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구성된 것은 재해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철저히 준비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결과다.

◇재난 전문기관 없지만 철저히 실행·주민 대응력 높아 = 일본은 미국의 연방재난관리청(FEMA)처럼 재난 대응에 고도로 전문화된 기관을 두고 있지 않다.

재난 대응의 최고기관은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고 관련 각료가 참여하는 중앙방재회의며 내각부에 방재담당 특명 대신을, 총무성 산하에 소방청을 설치하는 등 주요 성·청을 재해 관련 지정행정기관으로 뒀다.

전문기관은 없지만 시각을 달리해서 보면 유사시에는 국가 전체가 나서는 형태다.

중앙의 계획을 기반으로 하고 지방 정부의 현장 대응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한국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중앙 정부에서 기초자치단체까지 내려가더라도 재난 대응이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이를 실제로 집행하는 데 필요한 인력과 자원을 확보하고 있다.

주민의 참여·협조가 왕성하다는 점은 일본 특유의 강점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지진의 20%가량이 일본에서 발생함에도 인명 피해는 전 세계의 3% 선에 그치는 것은 주민의 적극성을 끌어낸 방재 체계가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각급 학교의 방재 교육이 여기에 한몫했다.

사회, 체육·보건 등의 과목이나 특별 활동의 하나로 방재 교육을 하고 있으며 특히 지진이나 쓰나미 등 대규모 재해를 겪은 지역은 관련 교육에 심혈을 기울인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통상 초중고교는 연간 수차례씩 화재·지진 발생 등을 가정한 불시 피난·대응 훈련을 한다.

도쿄도시대학 부속 초등학교 이타바시 아키오(板橋昭夫) 교감은 "연간 5차례에 걸쳐 화재, 지진 등에 대비한 피난 훈련을 한다"며 "지진이 발생하면 지하철이 멈추고 귀가가 쉽지 않기 때문에 동일본대지진 이후에는 아동을 데리러 온 보호자에게 학생을 인계하는 훈련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도(東京都)는 '수도 직하 지진' 대비 훈련에 특히 주안점을 두고 있으며 인접한 주요 9개 섬의 쓰나미 피해를 염두에 둔 방재 훈련도 한다.

주민은 직장, 학교, 공공기관, 자치단체 등이 시행하는 방재 교육에 상당한 관심을 지니고 적극 참여하는 편이다.

이런 훈련이 유사시 생사를 가른다는 것을 주민이 비교적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다.

마쓰오 타카유키(松尾尙之) 도쿄도(東京都) 총무국 종합방재부 방재대책과장은 "대규모 재해, 특히 지진이 발생하면 90% 이상을 주민이 구조하며 행정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은 10%도 되지 않기 때문에 우선은 (주민이) 자조(自助)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형 재난·재해가 주민에게 위기의식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고 있으며 실제로 동일본대지진 이후 방재 훈련 참가 열의가 높아진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관공서, 기업, 공동주택 등은 지진방재대책 특별조치법에 따라 물, 식량, 발전기, 라디오, 전등, 담요, 구출도구 등을 보관하는 방재비축창고를 운영하는 등 각계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해를 대비하고 있다.

◇재난 교훈 방재대책에 반영…3·11 때는 '역부족' = 큰 피해를 낸 재해·재난을 겪으면 당시의 경험을 반영해 관련 제도를 손질하는 것이 일본 방재 시스템의 특징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일본 효고(兵庫)현 고베(神戶)시 일대를 강타한 한신·아와지(阪神·淡路)대지진(1995년 1월)을 겪은 직후인 1995년 7월에는 국가, 공공기관, 지방공공단체, 사업자 등 사회를 구성하는 각 주체가 재난 대응을 위해 할 일을 명시하고 실천할 수 있는 내용으로 방재 계획을 전면 개정했다.

또 지진에 취약한 목조·기와 건물이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에 따라 건축기준법에 따라 건조물의 내진 규제를 강화했다.

지진 후 응급 의료 제공이 지연돼 사망한 이들이 500명에 달한다는 보고에 따라 재해파견의료팀(DMAT)이 2005년 4월 발족했다.

이들은 의사, 간호사, 업무조정위원 등으로 구성돼 지역의 구급의료 역량을 뛰어넘는 재해·사고에 48시간 내에 대응할 수 있도록 기동성을 갖추고 있다.

1955년 혼슈(本州)와 시코쿠(四國) 사이의 세토(瀨戶) 내해에서 짙은 안개를 무릅쓰고 운항하던 시운마루(紫雲丸)호가 침몰해 수학여행 중인 난카이(南海) 중학교 학생 등 168명이 사망한 사건은 기상이 좋지 않을 때 당국이 선박의 출항을 금하도록 규제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수영을 못하는 학생들이 다수 익사했고 이 사건은 같은 해 바다에서 수영훈련을 하던 여중생 36명이 사망한 쓰카이간(津海岸) 집단수난사고와 맞물려 일본 내 각급 학교에 수영장 설치를 촉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09년 11월 13일 일본 해운사 마루에이페리 소속 여객선 아리아케 호가 전도돼 중유가 대량 유출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일본 정부는 싣고 있던 화물이 한쪽으로 쏠린 것이 원인이 됐다는 판단에 따라 자동차, 컨테이너 등의 결박 방식을 개선하도록 지시했다.

그럼에도, 일본이 모든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처한 것은 아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의 예상을 뛰어넘은 대표적인 재난이다.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일본은 물론 전 세계 원전 전문가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고 이에 대한 해법은 아직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일본이 비교적 자신감을 보였던 쓰나미 대책도 무기력했다.

일본은 당시의 경험을 반영해 방재 대비책을 한층 공고히 하려고 애쓰고 있다.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반대의 목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도호쿠(東北) 지역 해안에는 대규모 방조제가 건설 중이며 쓰나미 피해 지역은 건물을 짓기에 앞서 지반 높이기를 하고 있다.

또 중앙방재회의가 작년 말 결정한 '수도 직하 지진 대책 대강'은 앞으로 30년간 발생 확률이 70%인 규모 7의 지진뿐 아니라 수백 년에 한 번 발생할 정도로 가능성이 낮은 규모 8의 지진에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취재보조: 이와이 리나 통신원)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