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 라이프] 서경배 회장, '행복지수 1위' 부탄에서 직원 '삶의 질'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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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오피스 -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현장 판매사원 한마디에 단종제품 다시 내놔
2020년 '원대한 기업'의 꿈
설화수 등 5대 브랜드 육성…전체 매출 50% 이상은 해외서
개성상인 DNA
제품력 있어야 고객 신뢰 얻어…할머니·부친 유지 이어받아
R&D에 대대적 투자
현장 판매사원 한마디에 단종제품 다시 내놔
2020년 '원대한 기업'의 꿈
설화수 등 5대 브랜드 육성…전체 매출 50% 이상은 해외서
개성상인 DNA
제품력 있어야 고객 신뢰 얻어…할머니·부친 유지 이어받아
R&D에 대대적 투자
“현장 판매 사원들은 회사의 은인입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가장 자주 하는 얘기다. 틈만 나면 지방 영업소를 직접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방문판매원으로 불렸던 ‘아모레 카운셀러’들을 만나 의견을 듣기 위해서다. 1964년 업계 최초로 방문판매 영업 방식을 도입한 아모레퍼시픽은 현재 3만6000여명의 아모레 카운셀러를 두고 있다.
지난 1월에는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영업소를 방문했다. “생산이 중단된 설화수의 ‘예서 립케어’, ‘진설 윤팩트’를 찾는 고객들이 꽤 많습니다. 생산을 재개하면 안 될까요.” 판매량이 많지 않아 단종된 일부 제품을 부활시켜 달라는 한 카운셀러의 요청이었다.
서 회장은 본사로 돌아와 해당 제품을 재출시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했다. 카운셀러 한 명의 의견도 허투루 듣지 않고 현장의 목소리를 신속하게 경영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부터 매년 봄에 열리는 아모레 카운셀러 대회에도 참석해 카운셀러들과 소통한다. 지난달 10일 서울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제15회 아모레 카운셀러 대회에는 4만여명이 참석했다.
부탄에서 찾은 ‘직원행복 우선주의’
서 회장은 국내 영업현장을 누비는 것 못지않게 해외에도 자주 나간다. 해외시장을 점검하기도 하고 경영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사장 시절인 2011년 초 극빈국인 부탄을 방문했다. 부탄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수준은 낮지만 국민총행복(GNH) 지수가 높기로 유명한 나라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보수당 대표 시절이던 2006년 ‘잘 먹고 행복하게 사는 사회’의 이상향으로 꼽은 나라이기도 하다.
서 회장은 당시 부탄의 한 사원에서 승려 4만여명이 70여만 국민의 행복을 한 명 한 명 기원해주는 모습을 접하고 크게 감명받았다고 한다. 귀국길에 임직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후 △오전 7~10시 중 1시간 단위로 선택해 출근할 수 있도록 한 시차출퇴근제도 △현장 근무가 잦은 영업사원들을 위한 현장출퇴근 제도 △여름휴가의 연중휴가 전환 △‘샌드위치 데이’의 지정휴일제 등 ‘행복한 회사’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다.
지난해 1월부터는 이니스프리 전국 600여개 매장 직원 2000여명에게 다리 마사지기, 스트레칭 발판, 다리 전용 마사지젤 등을 지급하는 ‘그린어스 웰빙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하루 종일 매장에 서 있는 직원들의 피로를 덜어주기 위한 배려 차원에서 마련한 제도다.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그룹) 사장 시절이던 2002년에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려고 사내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기도 했다. 서 회장은 회사에서 ‘서 회장님’이 아니라 ‘서경배님’으로 불린다.
‘할머니의 부엌’…개성상인 3세
2세 경영인으로 알려졌지만 서 회장은 엄밀히 말하면 3세 경영인이다. 그의 할머니 고(故) 윤독정 여사가 개성 자택 부엌에서 동백나무 열매를 곱게 빻아 압착·추출한 동백기름을 내다 판 게 가업의 시초다. 부친이자 창업주인 고 서성환 회장도 공식 모임이 있을 때마다 입버릇처럼 “우리 회사의 모태는 내 어머니”라고 말하곤 했다.
선대 회장은 1945년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설립, 국내 화장품 사업 역사를 다시 썼다. 고객과의 신뢰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개성상인 정신은 부친을 거쳐 서 회장에게로 이어졌다. “좋은 원료를 구하지 못하면 절대 고품질 동백기름을 만들 수 없다는 게 할머니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보부상들의 발품을 빌리는 것이었어요. 이 지방, 저 지방 다니는 보부상들에게 남부지방에 자라고 있는 싱싱한 동백나무 열매를 구해 달라고 한 거죠.”
서 회장은 고객에게 신뢰받으려면 제품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할머니와 부친의 유지를 이어받아 매년 매출의 3% 정도를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지난 3월 출시한 아모레퍼시픽의 ‘루미너스이펙트 브라이트닝 세럼·앰플·아이세럼’은 세계 최초 발효 녹차 화이트닝 화장품이다. 2008년 세계 최초로 미백·보습에 뛰어난 오-디하이드록시이소플라본을 발견한 뒤 제품에 반영한 것이다.
농가에서 매수하는 대신 제주도 땅을 직접 개간해 연간 1000t 이상 생산능력을 갖춘 세계적인 규모(대지 면적 2만9113㎡)의 차류 생산기지로 만든 것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경영하는 서 회장의 개성상인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녹차 브랜드인 오설록은 이곳에서 재배한 유기농 원료로만 차를 만든다.
글로벌 전략…‘아시안 뷰티’
1994년 31세에 태평양 기획조정실 사장을 맡아 경영 전면에 나선 그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미래 청사진을 그렸다. 증권·패션·야구단·농구단 등을 정리하고 화장품 사업에 집중했다. 그룹의 화장품 사업 비중은 현재 84.8%다.
화장품 사업에 전념하면서 국내 1위에 안주하지 않았다. 세계로 뻗어가는 초석을 놓기 위해 노력해왔다.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때 징용당해 중국으로 끌려갔어요. 전쟁이 끝났지만 고국에 바로 돌아오지 않고 중국 곳곳을 돌아다녔죠. 그때 드넓은 중국을 보면서 ‘아시아적인 것이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들었어요. 화장품을 통해 아시아적인 가치를 세계에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된 거죠.”
선대 회장의 꿈은 서 회장을 통해 이뤄졌다. 차근차근 해외시장을 공략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그룹 산하 해외법인은 홍콩·중국·프랑스·미국 등 12개국 16개다. 그룹 전체 매출은 지난해 처음으로 3조원을 돌파했다. 아모레 퍼시픽 전체 매출 중 해외법인 수출로 인한 매출은 5399억원(17.4%) 이었다.
지난 9일 공시한 올해 1분기 실적 중 해외시장에서의 화장품 사업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9.7% 증가한 1923억원이었다. 서 회장이 지난해 9월 창립 68주년 기념식에서 “가까운 미래에 회사 전체 매출의 51% 이상을 한국 밖에서 내겠다”고 장담한 게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에게는 꿈이 있다. 그는 지난 1월 시무식에서 자신의 꿈을 담은 비전을 이같이 제시했다. “2020년까지 5대 글로벌 챔피언 뷰티 브랜드인 설화수·라네즈·마몽드·에뛰드·이니스프리를 육성해 글로벌 사업 비중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습니다.”
■ 서경배 회장 프로필
△1963년, 서울 △경성고,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코넬대 경영대학원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그룹) 입사(1987) △태평양제약 사장(1992년) △태평양 기획조정실 사장(1994) △태평양 사장(1997년) △대한화장품협회장(2003) △태평양·아모레퍼시픽 사장(2006년)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2013년)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
지난 1월에는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영업소를 방문했다. “생산이 중단된 설화수의 ‘예서 립케어’, ‘진설 윤팩트’를 찾는 고객들이 꽤 많습니다. 생산을 재개하면 안 될까요.” 판매량이 많지 않아 단종된 일부 제품을 부활시켜 달라는 한 카운셀러의 요청이었다.
서 회장은 본사로 돌아와 해당 제품을 재출시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했다. 카운셀러 한 명의 의견도 허투루 듣지 않고 현장의 목소리를 신속하게 경영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부터 매년 봄에 열리는 아모레 카운셀러 대회에도 참석해 카운셀러들과 소통한다. 지난달 10일 서울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제15회 아모레 카운셀러 대회에는 4만여명이 참석했다.
부탄에서 찾은 ‘직원행복 우선주의’
서 회장은 국내 영업현장을 누비는 것 못지않게 해외에도 자주 나간다. 해외시장을 점검하기도 하고 경영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사장 시절인 2011년 초 극빈국인 부탄을 방문했다. 부탄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수준은 낮지만 국민총행복(GNH) 지수가 높기로 유명한 나라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보수당 대표 시절이던 2006년 ‘잘 먹고 행복하게 사는 사회’의 이상향으로 꼽은 나라이기도 하다.
서 회장은 당시 부탄의 한 사원에서 승려 4만여명이 70여만 국민의 행복을 한 명 한 명 기원해주는 모습을 접하고 크게 감명받았다고 한다. 귀국길에 임직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후 △오전 7~10시 중 1시간 단위로 선택해 출근할 수 있도록 한 시차출퇴근제도 △현장 근무가 잦은 영업사원들을 위한 현장출퇴근 제도 △여름휴가의 연중휴가 전환 △‘샌드위치 데이’의 지정휴일제 등 ‘행복한 회사’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다.
지난해 1월부터는 이니스프리 전국 600여개 매장 직원 2000여명에게 다리 마사지기, 스트레칭 발판, 다리 전용 마사지젤 등을 지급하는 ‘그린어스 웰빙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하루 종일 매장에 서 있는 직원들의 피로를 덜어주기 위한 배려 차원에서 마련한 제도다.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그룹) 사장 시절이던 2002년에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려고 사내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기도 했다. 서 회장은 회사에서 ‘서 회장님’이 아니라 ‘서경배님’으로 불린다.
‘할머니의 부엌’…개성상인 3세
2세 경영인으로 알려졌지만 서 회장은 엄밀히 말하면 3세 경영인이다. 그의 할머니 고(故) 윤독정 여사가 개성 자택 부엌에서 동백나무 열매를 곱게 빻아 압착·추출한 동백기름을 내다 판 게 가업의 시초다. 부친이자 창업주인 고 서성환 회장도 공식 모임이 있을 때마다 입버릇처럼 “우리 회사의 모태는 내 어머니”라고 말하곤 했다.
선대 회장은 1945년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설립, 국내 화장품 사업 역사를 다시 썼다. 고객과의 신뢰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개성상인 정신은 부친을 거쳐 서 회장에게로 이어졌다. “좋은 원료를 구하지 못하면 절대 고품질 동백기름을 만들 수 없다는 게 할머니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보부상들의 발품을 빌리는 것이었어요. 이 지방, 저 지방 다니는 보부상들에게 남부지방에 자라고 있는 싱싱한 동백나무 열매를 구해 달라고 한 거죠.”
서 회장은 고객에게 신뢰받으려면 제품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할머니와 부친의 유지를 이어받아 매년 매출의 3% 정도를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지난 3월 출시한 아모레퍼시픽의 ‘루미너스이펙트 브라이트닝 세럼·앰플·아이세럼’은 세계 최초 발효 녹차 화이트닝 화장품이다. 2008년 세계 최초로 미백·보습에 뛰어난 오-디하이드록시이소플라본을 발견한 뒤 제품에 반영한 것이다.
농가에서 매수하는 대신 제주도 땅을 직접 개간해 연간 1000t 이상 생산능력을 갖춘 세계적인 규모(대지 면적 2만9113㎡)의 차류 생산기지로 만든 것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경영하는 서 회장의 개성상인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녹차 브랜드인 오설록은 이곳에서 재배한 유기농 원료로만 차를 만든다.
글로벌 전략…‘아시안 뷰티’
1994년 31세에 태평양 기획조정실 사장을 맡아 경영 전면에 나선 그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미래 청사진을 그렸다. 증권·패션·야구단·농구단 등을 정리하고 화장품 사업에 집중했다. 그룹의 화장품 사업 비중은 현재 84.8%다.
화장품 사업에 전념하면서 국내 1위에 안주하지 않았다. 세계로 뻗어가는 초석을 놓기 위해 노력해왔다.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때 징용당해 중국으로 끌려갔어요. 전쟁이 끝났지만 고국에 바로 돌아오지 않고 중국 곳곳을 돌아다녔죠. 그때 드넓은 중국을 보면서 ‘아시아적인 것이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들었어요. 화장품을 통해 아시아적인 가치를 세계에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된 거죠.”
선대 회장의 꿈은 서 회장을 통해 이뤄졌다. 차근차근 해외시장을 공략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그룹 산하 해외법인은 홍콩·중국·프랑스·미국 등 12개국 16개다. 그룹 전체 매출은 지난해 처음으로 3조원을 돌파했다. 아모레 퍼시픽 전체 매출 중 해외법인 수출로 인한 매출은 5399억원(17.4%) 이었다.
지난 9일 공시한 올해 1분기 실적 중 해외시장에서의 화장품 사업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9.7% 증가한 1923억원이었다. 서 회장이 지난해 9월 창립 68주년 기념식에서 “가까운 미래에 회사 전체 매출의 51% 이상을 한국 밖에서 내겠다”고 장담한 게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에게는 꿈이 있다. 그는 지난 1월 시무식에서 자신의 꿈을 담은 비전을 이같이 제시했다. “2020년까지 5대 글로벌 챔피언 뷰티 브랜드인 설화수·라네즈·마몽드·에뛰드·이니스프리를 육성해 글로벌 사업 비중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습니다.”
■ 서경배 회장 프로필
△1963년, 서울 △경성고,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코넬대 경영대학원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그룹) 입사(1987) △태평양제약 사장(1992년) △태평양 기획조정실 사장(1994) △태평양 사장(1997년) △대한화장품협회장(2003) △태평양·아모레퍼시픽 사장(2006년)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2013년)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