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히타치의 R&D 성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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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춘호 논설위원·공학博 ohchoon@hankyung.com
일본 히타치가 지난해 실적을 발표한 엊그제 기자회견장은 마치 무슨 기념일을 보는 듯 요란스러웠다. 지난해 매출액이 9조6162억엔(약 100조원)으로 23년 만에 최고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이뤄냈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들은 일본 제조업의 부활을 상징하는 자리였고 실적발표의 백미였다고 표현했다.
일본 기업들의 지난해 실적은 완연한 회복세를 보여주고 있다. 상장 기업들의 수익이 전년 대비 40% 증가했다는 보고도 있다. 도요타는 사상 최고의 이익을 냈다고 자랑한다. 혼다와 닛산 등 다른 자동차 업체들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닌 모양이다.
日, 가전왕국 부활로 여겨
그러나 일본인들의 관심사는 온통 전자였다. 한국의 삼성전자 등에 밀려 전자왕국 자리를 뺏긴 애통함이 일본인들의 마음에 녹아 있는 것이다. 그렇게 히타치의 성장을 기뻐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발표될 소니의 가전부문 실적은 대폭 적자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바도 순이익이 전년 대비 34.3%나 떨어졌다. 히타치와 지난해 직원들을 대폭 정리한 파나소닉만 3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냈다. 소니는 아예 임원들이 보너스를 반납하고 급여도 삭감하는 등 극단의 자구 조치를 취할 모양이다. 소니가 불황을 겪은 이후 수년째 계속되는 일종의 이벤트다. 소니 임원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정작 기업들의 연구개발(R&D) 투자액 읽기가 흥미거리다. 지난해 R&D 투자액이 많았던 기업은 단연 소니(4600억엔)와 파나소닉(4788억엔)이다. 히타치(3514억엔)는 이들 기업보다 R&D투자가 30%가량 적었지만 매출액은 오히려 2조엔가량 많았다. 올해도 히타치에 연구개발비는 지난해보다 불과 1% 많은 3550억엔 투자에 그친다. 그렇다고 히타치가 R&D에 소홀히 한다고 볼 수는 없다. 히타치는 반도체나 가전사업에서 순위에 밀리자 일찌감치 업종을 바꾸고 사업을 재편하는 등 체질을 개선했다. 중전기나 IT 인프라, 화학재료 등 신규 사업에 뛰어들면서 관련부문의 R&D로 방향을 바꿨다.
투자 효율성이 기업 성패 갈라
무엇보다 이들은 R&D 조직을 슬림화하고 일원화했다. 2010년 요코하마에 R&D 거점을 만들고 개발 인원을 한 군데 집약했다. 그룹의 각 회사들이 중복으로 연구하던 것을 모두 정리했다. 남은 연구 인력들은 스마트그리드 등 사회인프라 IT시스템을 만드는 데 투입했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R&D의 효율성에서 파나소닉과 미쓰비시 등에 밀렸던 기업이 히타치다. 이제 보다 적은 투자로 일본 최고의 가전 기업으로 자리잡게 됐다. 반면 10년 이상 R&D에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부었던 소니와 파나소닉은 매출이 영 신통찮다. 기존의 사업만 정리하기에 바쁘다. 소니는 TV사업을 매각하고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 만큼 다급한 모양이다. 도시바나 미쓰비시전기 등도 R&D 투자에 전혀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에 빠져 있다 시장과 비즈니스를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기존 제품을 개선하거나 원가를 절감하는 방향으로만 초점이 맞춰졌다. R&D 조직 간 갈등이나 분화도 문제였다. 시장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동적 사고의 유무가 기업의 생사를 가늠한다. R&D 효율화와 조직에 대한 고민도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이제 한국도 추격형 경제가 아니다. 진지하게 R&D를 생각할 때다.
오춘호 논설위원·공학博 ohchoon@hankyung.com
일본 기업들의 지난해 실적은 완연한 회복세를 보여주고 있다. 상장 기업들의 수익이 전년 대비 40% 증가했다는 보고도 있다. 도요타는 사상 최고의 이익을 냈다고 자랑한다. 혼다와 닛산 등 다른 자동차 업체들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닌 모양이다.
日, 가전왕국 부활로 여겨
그러나 일본인들의 관심사는 온통 전자였다. 한국의 삼성전자 등에 밀려 전자왕국 자리를 뺏긴 애통함이 일본인들의 마음에 녹아 있는 것이다. 그렇게 히타치의 성장을 기뻐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발표될 소니의 가전부문 실적은 대폭 적자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바도 순이익이 전년 대비 34.3%나 떨어졌다. 히타치와 지난해 직원들을 대폭 정리한 파나소닉만 3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냈다. 소니는 아예 임원들이 보너스를 반납하고 급여도 삭감하는 등 극단의 자구 조치를 취할 모양이다. 소니가 불황을 겪은 이후 수년째 계속되는 일종의 이벤트다. 소니 임원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정작 기업들의 연구개발(R&D) 투자액 읽기가 흥미거리다. 지난해 R&D 투자액이 많았던 기업은 단연 소니(4600억엔)와 파나소닉(4788억엔)이다. 히타치(3514억엔)는 이들 기업보다 R&D투자가 30%가량 적었지만 매출액은 오히려 2조엔가량 많았다. 올해도 히타치에 연구개발비는 지난해보다 불과 1% 많은 3550억엔 투자에 그친다. 그렇다고 히타치가 R&D에 소홀히 한다고 볼 수는 없다. 히타치는 반도체나 가전사업에서 순위에 밀리자 일찌감치 업종을 바꾸고 사업을 재편하는 등 체질을 개선했다. 중전기나 IT 인프라, 화학재료 등 신규 사업에 뛰어들면서 관련부문의 R&D로 방향을 바꿨다.
투자 효율성이 기업 성패 갈라
무엇보다 이들은 R&D 조직을 슬림화하고 일원화했다. 2010년 요코하마에 R&D 거점을 만들고 개발 인원을 한 군데 집약했다. 그룹의 각 회사들이 중복으로 연구하던 것을 모두 정리했다. 남은 연구 인력들은 스마트그리드 등 사회인프라 IT시스템을 만드는 데 투입했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R&D의 효율성에서 파나소닉과 미쓰비시 등에 밀렸던 기업이 히타치다. 이제 보다 적은 투자로 일본 최고의 가전 기업으로 자리잡게 됐다. 반면 10년 이상 R&D에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부었던 소니와 파나소닉은 매출이 영 신통찮다. 기존의 사업만 정리하기에 바쁘다. 소니는 TV사업을 매각하고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 만큼 다급한 모양이다. 도시바나 미쓰비시전기 등도 R&D 투자에 전혀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에 빠져 있다 시장과 비즈니스를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기존 제품을 개선하거나 원가를 절감하는 방향으로만 초점이 맞춰졌다. R&D 조직 간 갈등이나 분화도 문제였다. 시장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동적 사고의 유무가 기업의 생사를 가늠한다. R&D 효율화와 조직에 대한 고민도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이제 한국도 추격형 경제가 아니다. 진지하게 R&D를 생각할 때다.
오춘호 논설위원·공학博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