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정리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리멤버’를 서비스하고 있는 드라마앤컴퍼니의 최재호 대표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출신이다. BCG에서 억대 연봉을 받던 최 대표는 자기 사업을 하기 위해 고전하던 스타트업 프로필미에 합류했다. 이후 대표가 된 그는 사명을 드라마앤컴퍼니로 바꾸고 리멤버를 내놓으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광고를 보면서 돈을 벌게 해주는 앱 ‘캐시슬라이드’를 서비스하는 NBT파트너스의 박수근 대표와 국내 최연소 벤처캐피털 대표인 임지훈 케이큐브벤처스 대표도 BCG 출신이다.
기업, 컨설팅 의존도 갈수록 감소
BCG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 인맥도 만만치 않다. 영유아 보육업계를 중심으로 알림장 앱을 서비스하는 키즈노트는 지난달 맥킨지 출신 차윤지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영입했다.
최근 ‘배달의 민족’에 도전장을 내민 배달 앱 업체 ‘요기요’의 나제원 대표와 소셜커머스 ‘슈가딜’을 창업해 위메프에 매각한 박은상 위메프 대표는 맥킨지 입사 동기다.
모바일 게임 스타트업 코쿤게임즈의 이정욱 대표는 베인&컴퍼니 출신이다. 현재 스타트업에서 활동하고 있는 컨설턴트 출신 인재는 20~30명으로 추정된다.
컨설팅 업계 인사 적체 심화
젊은이들의 선망의 대상이던 컨설턴트들이 스타트업으로 몰리고 있는 것은 최근 컨설팅 업계의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1998년 맥킨지의 ‘한국 재창조 보고서’가 히트한 이래 외국계 컨설팅 업체들은 호황을 누렸다. 외환위기를 맞아 패닉에 빠진 정부와 대기업들은 일이 있을 때마다 컨설팅 기업을 찾았다. 건당 100억원이 넘는 대형 프로젝트도 적지 않았다.
요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100억원은커녕 50억원짜리 프로젝트도 드물다. 전략 컨설팅에 대한 필요성과 의존도가 줄었다. 기업 내부 사정이나 생산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컨설팅 업체에 수백억원을 주느니 내부 직원의 목소리를 듣는 게 더 낫다는 인식이 퍼졌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전략 컨설팅=허울만 좋은 보고서’란 인식이 뿌리내린 지 오래”라며 “맥킨지에 의존했던 LG전자가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를 예측하지 못해 부진에 빠진 것은 전략 컨설팅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인사 적체가 심해 승진이 어려운 국내 컨설팅 업계의 현실도 인재 이탈을 부추겼다.
인력 충원도 스타트업과 경쟁
‘창조경제’를 기치로 스타트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늘어난 것도 고급 인재가 스타트업에 몰리는 주요 이유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창업보육기관을 지정해 지원하고,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돕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분기마다 유망 스타트업을 선정해 최대 5억원까지 무상 지원하고 있다.
벤처투자사가 늘면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BCG 관계자는 “컨설팅 기업은 인재 양성소의 개념이 강하다”며 “기존에 투자은행(IB)이나 대기업으로 이직하던 컨설턴트들이 최근 스타트업으로 진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젊은 인재들이 스타트업으로 몰려가면서 컨설팅 기업의 채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컨설팅 기업을 선호하던 대학생들의 지원이 뜸해지면서다. 한 컨설팅 기업 관계자는 “외국계 컨설팅 기업은 일반적으로 국내 명문대 졸업생 위주로 채용하는데 이들이 최근 스타트업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인재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대안으로 눈을 돌린 것이 미국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로 돌아오는 유학생들”이라고 말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