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보험사 증권사 카드사 등 85개 금융회사의 홈페이지와 전국 1만7500여개 영업점 출입구에 지난 12일부터 ‘민원발생평가 등급’이 어느 수준인지 나타내는 ‘딱지’가 붙었다. ‘1등급(우수)’이라고 자랑스럽게 붙인 금융회사가 있는가 하면 ‘5등급(불량)’이라고 고백한 금융회사도 17개나 된다. 금융회사들은 이 딱지를 오는 8월13일까지 3개월간 게시해야 한다.

○영업점에 3개월간 게시

'불량딱지' 붙은 점포, 전국에 3000곳
금융사들은 12일부터 홈페이지 및 각 지점 출입구에 자사 민원발생평가 등급을 게시했다. 이 등급은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민원 건수와 해결 노력 등을 고려해 매긴 것이다. 금융사들은 소비자들이 등급을 쉽게 알 수 있도록 붉은 글씨로 등급을 적었다. 5등급은 ‘불량’, 4등급은 ‘미흡’, 3등급은 ‘보통’을 의미한다. 2등급과 1등급은 각각 ‘양호’와 ‘우수’를 나타낸다.

영업점 게시 땐 A4 용지에 컬러로 인쇄해 입구에 부착하도록 했다. 등급을 쓴 글자 한 자의 크기는 엄지손가락만 한 폰트 55다. 홈페이지 게시 때는 초기화면에 공시해야 하며 홈페이지 내 일반 글씨의 3배로 써야 한다. 게시 기간은 홈페이지와 영업점 모두 석 달간이다.

금융사들이 등급을 게시한 것은 금감독이 금융사들의 소비자보호 강화를 유도하기 위해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이름을 공개해 부끄러움을 주려는 이른바 ‘네임 앤드 셰임(Name & Shame)’ 처분이다.

○숨기고 줄이고…크게 알리기도

등급이 나쁜 일부 금융사는 등급이 잘 보이지 않도록 ‘꼼수’를 쓰는 모습도 보였다.

5등급을 받은 농협은행 A지점은 사람들이 다니는 출입구가 아닌 옆 벽면에 게시했다. 4등급인 신한은행 B지점은 지점에 들어갈 때는 보지 못하게 반대 방향의 벽면에 붙였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객들이 영업점에 들어오다가 등급을 보고 돌아가지 않을까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일부는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 등급을 게시하지 않았거나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작게 표시했다가 금감원으로부터 시정조치를 받기도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홈페이지를 통한 등급 공지 현황을 점검했더니 20여개사가 지침을 따르지 않아 시정 조치했다”고 말했다.

반면 1등급을 받은 금융사들은 “등급을 쓴 글자의 크기를 더 키워도 되느냐”고 금감원에 질의해 허락을 받아 홍보 기회로 활용하기도 했다.

○평가 잣대 불만도

최하등급인 5등급을 받은 국민은행과 신한카드 동부증권 등 17개 금융사(영업점 3000개)는 금감원의 조치가 너무 가혹하다는 반응이다. 금융사의 생명은 고객의 신뢰인데 ‘불량 딱지’가 붙어 마치 신용불량 금융사처럼 보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영업점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사기를 크게 꺾은 조치라는 불만도 많다.

일부 금융사는 금감원의 민원발생평가 잣대가 ‘고무줄’이라는 불만도 쏟아내고 있다. 악성, 억지성 민원에 대한 판단 기준도 자의적이라는 게 금융사들의 불만이다. 중복되거나 반복된 민원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금감원이 평가 방법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는 비판도 많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규모가 클수록 고객 수가 많아 민원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평가 때 은행 규모를 반영한다고 하지만 등급을 보면 대형 은행일수록 등급이 나쁘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