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문가의 책무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전문가’의 책무를 생각한다. 전문가란 어떤 일을 수행하느냐와 상관없이 직업의식이 투철한 사람을 의미한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식당에 가면 종업원이 있는데 손님들을 정성을 다해서 섬긴다고 하면 이들이 곧 전문가다. 배에 탑승한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선장에게도 이에 상응하는 전문가로서의 책무가 있음은 당연하다.

최근 감사를 받기 이전 즉, 확정 이전의 잠정 재무제표를 증권선물위원회에 미리 제출하는 제도가 추진되는 데 대한 논란이 뜨겁다. 새 제도의 취지는 외부감사인이 재무제표를 대신 작성하는 것을 원천봉쇄하려는 것이다. 회계업계는 새 제도가 시행되면 기업이 감사인에게 재무제표 점검 시점을 당겨줄 것을 요구할 것이므로 시간상 더 많은 부담만 안게 된다는 불만이 있다. 회사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외부 감사인에게 재무제표 작성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데 너무 이상적인 정책을 추진한다는 불만을 표출한다. 새 제도는 감사인의 재무제표 작성을 금지하고 있는데 감사인이 재무제표 작성을 대행하는 게 업계의 관행이었다.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불법이 자행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이 회계실무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업들은 사내에 회계 전문가가 없고 별도로 회계전문가를 쓰기도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국의 대학에서 경영학은 인기 있는 전공이고, 회계학 교육을 받은 대학생들이 배출되고 있는데 기업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대학에서 충분한 회계 지식을 배운 학생들에게 기업과 정부 등 사회 요소요소에서 투명성을 위해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대학도 기업이 필요로 하는 실무에 기초한 교육을 하는 데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세월호 사건에서도 예외 없이 분식회계 문제가 드러났다. 모든 부정 뒤에는 이를 드러내고 보고해야 하는 회계 부실이 항시 문제가 되는 것이다. 회계 전문가들이 이러한 부정을 제어할 수 있도록 사회가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 아파트 관리비,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하는 선박회사 운영 등 사회의 시스템을 다시 세우고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 데 전문가를 대거 투입해야 한다.
물론 세모를 감사한 회계 전문가들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감사를 수행하지 않았다면 응분의 대가를 물어야 한다. 사회의 모든 영역이 적절히 측정, 보고 및 공유될 때 한국 사회는 잘 짜여진 시스템으로 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손성규 <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