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나렌드라 모디
영국인 감독 대니 보일이 연출한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는 인도에서 한때 상영금지 운동까지 벌어졌고 인도 정부도 불편해 하는 영화다. 영화는 2002년 힌두교도가 무슬림을 집단 공격한 구자라트 폭동부터 드러내놓고 보여준다. 퀴즈쇼 주인공인 고아 자말과 그가 연모한 라티카는 바로 그 폭동의 피해자들이다.

2002년 2월27일 아침, 구자라트주(州) 고드라에서 원인 모를 열차 화재로 힌두교 순례자 59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무슬림의 테러라는 소문이 돌자 과격 힌두교도들이 폭동을 일으켜 1000여명의 무슬림을 학살했다. 경찰도 폭동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샀다. 인도 현대사의 오점으로 남은 구자라트 폭동이다.

파키스탄 접경지역 해안에 위치한 구자라트주는 타지마할을 낳은 무굴제국의 영화를 누렸던 곳이다. 그러나 인도 독립 후엔 25%를 차지하는 무슬림이 소수 피지배자로 지위가 역전됐다. 마하트마 간디의 고향이자 면직물 생산 중심지여서 식민지시절 ‘동방의 맨체스터’로 불렸을 만큼 부유하지만 그만큼 빈부격차도 크다. 뉴욕에 사는 인도계의 약 40%는 이 지역 출신이라고 한다.

구자라트 폭동이 새삼 관심을 끈 것은 당시 주총리가 인도의 차기 총리로 오는 21일 취임하는 나렌드라 모디(64)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층계급인 ‘간치(상인)’에 속하는 잡화상의 6남매 중 셋째로 1950년 태어났다. 기차역에서 ‘짜이(인도 차)’를 팔다 1965년 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에 자원입대했고 국수주의 단체인 민족의용단(RSS)에도 가입했다. 1985년 RSS의 정당조직인 인도국민당(BJP)에 들어가 전략가이자 선동가로 승승장구해왔다.

모디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2001년부터 구자라트 주총리를 3연임하며 포드, GM, 타타 등 대규모 투자유치와 관료주의 타파로 중산층의 인기가 높다. 일벌레이지만 구겨진 옷은 입지 않을 만큼 스타일리스트다. 채식주의자이면서 시를 쓰거나 사진전을 열고 트위터, 구글+ 등 하이테크에도 능숙하다.

그러나 모디는 구자라트 폭동의 여파로 2005년 미국비자가 거부됐고 유럽 방문도 불허되다 최근 풀렸다. 그는 2009년이 되어서야 인도 대법원 판결로 혐의를 벗었다. 모디는 힌두 민족주의 성향이 워낙 강해 종교·민족·빈부 갈등의 중재자로는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경제적 업적과 정치적 부담 사이에서 모디가 이끌 12억 인도의 미래가 주목된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