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당국의 고심은 깊다. 원·달러 환율의 오랜 지지선이던 1050원 선이 지난달 9일 깨진 뒤 외환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다. 해외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들이 환율 추가 하락에 ‘베팅’한다는 소문이 돌고, 기업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과거 환율하락기에 우왕좌왕했던 외환당국이 이번엔 ‘환율딜레마’를 어떻게 풀어낼지가 중요하다.

○노골적인 시장개입 어려워

국내 외환시장은 주요국과 비교해 특수한 환경에 놓여 있다. 원화는 정해진 시간에 대부분 국내에서 거래되고, 은행 등 소수의 참가자가 참가한다. 정부가 달러를 사거나 팔아 환율변동 속도를 조절하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외환당국의 움직임이 원·달러 환율의 결정적인 변수가 되는 셈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개입을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원화가치를 의도적으로 내려 경상수지 흑자(25개월 연속)를 이끌어내고 있다며 감시의 눈을 치켜뜨고 있다. 이 탓인지 정부의 직접적인 외환시장 개입은 과거 환율하락기보다 덜 노골적이라는 평가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경상수지 흑자 급증세와 비교해 외환보유액 증가 속도가 줄었다. 경상수지 흑자가 커지면 환율하락 압력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외환보유액을 늘린다(달러매입). 금융위기 이전엔 경상수지 흑자 대비 외화보유 증가액이 1배 이상을 유지했지만 2011년 0.75배, 2012년 0.26배, 2013년 0.18배로 급락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직접적인 시장개입 대신 선물환시장 등을 통한 간접적 개입에 무게를 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금리인상기 겹치면

그런데 일본의 아베노믹스(엔저를 앞세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에 따라 원·엔 환율까지 세 자릿수를 실험하면서 정부도 개입강도를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됐다. 외환시장 한 관계자는 “엔·달러 환율이 102엔을 유지하는 가운데 원·엔 환율이 1000원 이상을 지키려면 원·달러 환율은 1020원을 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점심때 당국이 기습적으로 시장에 개입한 것도 환율이 1020원 선을 위협하던 때였다.

하지만 당국이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시장에선 환율 추가 하락에 대한 기대감이 이미 커진 상태다. 막을 수 없는 대세라는 견해도 많다. 정부가 환율 수준을 인위적으로 지탱하기보다는 속도조절에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이 따라서 우세하다.

2004~2007년 환율하락기에는 정부가 타이밍을 놓쳤다는 평가가 많다. 경기부양에 초점을 두면서 금리를 지속해서 떨어뜨린 것이다. 부동산 거품으로 금리를 정작 인상해야 할 때는 환율이 발목을 잡았다. 환율이 내리막을 탄 상태에서 금리를 올리면, 환차익을 쫓는 해외자금이 유입돼 환율은 더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믿었던 경상수지와 내수지표도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는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살아난 내수가 금방 꺾이진 않는다’며 안이한 인식을 보였다.

국내에서도 이르면 연말부터 금리인상을 논의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양적완화 축소와 긴축 논의로 금리가 오를 경우 한국도 보조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금리인상은 환율하락 요인인 만큼 정부가 또 다른 딜레마에 들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