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법률시장 규제인 ‘전문자격인 동업 금지’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변호사와 변리사, 회계사 등 전문자격인들이 동업을 할 수 없도록 한 규제는 개인 변호사 사무실이 대부분이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으로 법무법인(로펌)이 대형화된 지금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법조 인접직역 동업 허용해야”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대형 로펌을 중심으로 ‘변호사와 법조 인접직역 동업 금지 규정’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변호사법 34조 4항은 “변호사가 아닌 자는 변호사를 고용해 법률사무소를 개설·운영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변리사나 세무사, 관세사 등 변호사 이외 자격증 소지자는 로펌의 대표나 파트너(로펌의 주주 격)가 될 수 없다. 변호사가 산업계 등 다른 영역에서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하도록 보장하겠다는 게 이 규정의 취지다. 과거에는 개인 변호사 사무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이 규정이 문제가 안 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른 전문자격인도 로펌의 주요 인력으로 일하고 있어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특히 변리사 수요가 크게 늘어 최근 5년간 5대 로펌은 변리사 인력을 30% 이상 늘렸다.

대형 A로펌의 대표변호사는 “지금은 로펌이 법적 문제만 다루지 않고 경제 금융 세무 등 각종 영역에서 종합적 문제 해결자 역할을 하고 있다”며 “실력 있는 변리사 등 전문가를 영입하려면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줘야 하는데 동업 금지 규제가 걸림돌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변호사들이 자신들의 직무 영역을 지키려고 만든 규정인데 지금은 로펌이 업무영역을 넓히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다”고 했다.

변리사 B씨는 “기업 입장에서도 지식재산권 소송이 제기되면 법무법인과 특허법인을 왔다갔다하게 된다”며 “업무처리가 늦어지거나 의사소통에 비효율이 생기기 쉽다”고 설명했다.

◆선의의 범법자 양산 가능성도

동업 금지 규정 때문에 법무법인의 지식재산권 부문이 특허법인으로 분리된 곳도 있다. 법무법인 안에 있다가 분리된 특허법인 화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법무법인 세종은 특허법인 설립을 검토했지만 로펌이 특허법인의 경영에 관여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세종 관계자는 “로펌이 특허법인에 출자해도 경영권을 행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부 로펌은 지명도가 높은 변리사, 세무사 등에게 실질적으로는 파트너 대우를 해주는 등 규정을 우회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파트너에게만 줄 수 있는 배당을 인센티브 등의 명목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법은 법 위반 소지도 있어 ‘선의의 범법자’를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형 C로펌의 대표변호사는 “인지도 높은 변리사에게 월급만 받으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종 간 각종 제도와 법령 등이 얽혀 있어 규제를 푸는 게 쉽지만은 않다는 지적이다. 고객 비밀 준수 의무나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의 종류 등에서 업종 간 기준이 다른 부분이 많고 직업윤리 등도 다르다. 예를 들어 변호사법은 변호사의 공익활동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변리사, 세무사, 관세사 등에 대해서는 이런 규정이 없다.

법무부 관계자는 “규제를 풀면 새 시장이 생길 것인가가 중요한데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