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엄령에도 시민들은… > 태국 군부가 계엄령을 선포한 20일 수도 방콕에서 무장 차량에 올라 경계근무 중인 군인들 옆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방콕AFP연합뉴스
< 계엄령에도 시민들은… > 태국 군부가 계엄령을 선포한 20일 수도 방콕에서 무장 차량에 올라 경계근무 중인 군인들 옆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방콕AFP연합뉴스
태국 군부가 또다시 정국의 전면에 등장했다. 정치혼란기 때마다 등장해 권력 구도를 재편해온 군부는 20일 내각과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치안유지권을 발동했다. 일부에서는 반정부 친기득권층 성향의 군부가 태국 정치에 개입함에 따라 ‘사실상의 쿠데타’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군부 “치안 유지 목적…쿠데타 아니다”

프라윳 찬오차 육군 참모총장은 이날 군 TV 방송을 통해 “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며 이는 “쿠데타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계엄령은 국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며 “국민은 당황하지 말고 평소와 같이 행동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군부는 평화질서관리센터(CAPO) 등 정부 치안유지담당 기관의 기능을 정지시킨 뒤 병력을 수도 방콕시내에 투입, 치안질서 유지에 나섰다.

군부는 지난 15일 반정부 시위대(옐로셔츠)를 향한 무한 괴한들의 총격으로 3명이 숨지자 “폭력 사태가 계속된다면 군이 나설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지난 6개월간 친정부(레드셔츠)와 반정부 시위대 간 갈등에 이어 잉락 친나왓 총리의 실각으로 격화된 태국의 정치적 혼란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시위대는 계엄령 선포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레드셔츠와 옐로셔츠 시위대는 이날 예정된 시위를 모두 취소했다. 레드셔츠를 이끄는 짜투폰 쁘롬판 독재저항민주연합전선(UDD) 회장은 “계엄령 선포 뒤에도 현 정부는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며 “군에 항거하지 말고 협조하라”고 말했다. 옐로셔츠 역시 정부 퇴진을 위한 총 시위를 취소하고 시위 거점으로 돌아가 앞으로의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군부가 민간 방송사를 장악하면서 현지 언론도 일단 군의 통제에 따르고 있다.

◆과도정부 “일방적 계엄령은 쿠데타”

태국 과도정부는 이날 군의 계엄 선포를 사실상의 쿠데타로 규정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군이 내각과 사전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계엄을 선포했다”고 군부를 비판했다.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도 이날 트위터를 통해 “계엄령 선포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지에서는 군부의 계엄령이 옐로셔츠에 힘을 실어주려는 조치라고 진단하고 있다. 레드셔츠의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한 경험이 있는 군부가 정치에 개입해 옐로셔츠를 밀어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2010년 친기득권 성향의 아피싯 웨차치와 정권을 반대하는 레드셔츠의 시위를 군부가 진압하는 과정에서 9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김문영 KOTRA 방콕무역관장은 “군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재가 없이 군이 독자적으로 움직이기는 힘들다”며 “계엄령은 국왕과 군부로 대표되는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지지세력인 옐로셔츠를 도우려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군부가 지속적으로 태국 정치에 개입해온 사실도 계엄령 선포의 목적이 질서 유지에만 있다고 보기 힘든 이유 중 하나다. 태국에선 1932년 입헌군주제도가 수립된 이후 지금까지 18차례 쿠데타가 발생했고, 11차례 성공했다. 2006년 탁신 친나왓 정권 역시 군부 쿠데타를 통해 실각했다.

■ 레드셔츠ㆍ옐로 셔츠

농 민과 도시 빈민이 대다수인 ‘레드셔츠’는 탁신·잉락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친정부 세력을 뜻한다. 이들은 2006년 탁신 총리 실각 당시 군부가 현실 정치에 개입한 것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빨간색 셔츠를 입었다. 반면 반정부 세력을 뜻하는 ‘옐로셔츠’는 도시 중산층과 기존 엘리트 등 기득권층이 주로 참여하고 있다. 국왕을 지지하기 때문에 왕을 상징하는 노란색 셔츠를 입는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