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내수진작 기대한 원高 용인은 안돼
원화가치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지난 3월 달러당 1070원대에서 현재는 1020원대로 불과 두 달여 사이에 5% 넘게 절상됐다. 전 세계 주요 통화 중 원화의 절상 폭이 가장 크다. 원화환율의 세자릿수 진입이 머지않아 보인다. 빠른 원화절상의 주된 이유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6%를 넘는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에 있다. 그러나 경상수지 흑자 중에서 상당 부분은 내수부진에 따른 수입 위축에 기인한 것이다. 이른바 불황형 흑자로 인해 원화가 과도하게 절상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높아진 수출경쟁력으로 인해 원화절상이 과거와 달리 수출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글로벌 위기 이전인 2006~2007년에도 원화환율이 달러당 900원대였지만 수출은 연 14%씩 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 때는 세계경제가 연 5% 이상 고성장하던 호황기였고, 세계교역이 매년 15% 이상 급증하던 시기였다. 현재는 세계경제가 회복세라고 하나 성장률은 3%대에 불과하고 교역증가율도 성장률과 비슷한 수준이다. 특히 한국 수출시장의 60%에 해당하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제는 성장세가 둔화되는 추세다. 미국을 중심으로 선진국이 세계경제 회복을 주도하고 있으나 교역 증대를 통해 세계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과거와 달리 약하다. 선진국이 소비보다는 투자 위주로 회복되고 있는 데다 자국의 제조업 확대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미 달러화에 대해 주요 경쟁국 통화가 약세인데 비해 원화만 강세다. 엔화는 달러당 100엔대 초반의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엔저 추세가 장기화되면 일본 기업들은 수익성 개선과 투자 확대를 기반으로 점차 회생을 꾀할 가능성이 있다. 세계시장에서 존재감을 높여가고 있는 중국 기업들도 올 들어 나타나고 있는 위안화 절하 추세에 더욱 힘을 얻는 분위기다. 유로화도 디플레 타개를 위한 유럽중앙은행의 추가 통화완화가 예상되면서 약세로 전환될 조짐이다. 원화만 나홀로 절상 추세를 이어갈 경우 수출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단기간의 급속한 환율하락으로 잃어버린 경쟁력을 환율이 다시 상승한다고 해서 쉽게 되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고 추세가 장기화되면 한국 기업들은 과거 일본 기업들이 그랬듯 원화강세 대응에 골몰하느라 시장 변화에 뒤처질 우려가 있다.

위축된 내수를 부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원화절상을 반기는 움직임도 있으나 원화절상의 내수진작 효과는 불확실하다. 원화강세로 수입가격이 하락하면 국내소비자의 구매력이 늘어나 수입품뿐만 아니라 국내제품에 대한 수요를 늘릴 여유가 생겨날 수 있다. 그러나 원화절상은 수출 부진에 의한 소득감소 효과를 가져와 국내수요 증가를 제약할 수도 있다. 아직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상황에서는 마이너스 효과가 더 커 내수 확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원화절상이 내수확대에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불확실한 환율에 기댄 내수확대 방안은 지속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적절치도 않다. 내수 확대를 위해서는 규제개혁이나 인프라 개선 등 보다 구조적이고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내수기반을 튼튼히 하고 서비스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은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보유액 등으로 국제적으로 주시의 대상이다. 정책당국이 적극적으로 환율방어에 나서기에는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원화절상 추세 자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업들이 적응할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도록 속도조절 노력은 필요하다. 자칫 정책당국이 용인한다는 인상을 줄 경우 쏠림현상에 의해 원화절상을 가속시킬 수 있다. 환율안정 의지를 분명히 하고, 필요할 경우 시장개입도 적절히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창선 <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cslee@lger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