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는 사람들이 걸어온 역사와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사람들이 골목투어에 열광하는 이유는 골목이 가지고 있는
따스한 온기와 지난 시절의 추억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서울·부산·대구·광주의 근대골목을 걸으며
골목이 전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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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마을 골목의 소품가게.
세종마을 골목의 소품가게.
흔히 ‘서촌’이라고도 불려왔는데 2011년 서울 종로구가 세종대왕 탄신 614주년을 맞아 ‘세종마을’로 명명했다. 지하철 경복궁역 2번 출구가 세종마을 골목투어의 기점 구실을 한다. 자하문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우리은행을 지나 자하문로와 자하문로9길이 만나는 대로변에서 ‘세종대왕 나신 곳’이라는 표지석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다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 우리은행 뒤편으로 돌아가면 시인 이상의 옛집을 보게 된다. 도로변 유리창 벽면 위에 ‘통인동 154-10 이상의 집’이라는 글씨가 작은 크기로 쓰여 있고 기와지붕 위에서는 한글을 형상화한 네온들이 그의 시처럼 어지럽게 헤엄쳐 다닌다.

다음으로 찾아가볼 곳은 청운자동차공업사 옆 골목에 들어선 청전 이상범 화백(1897~1972)의 가옥과 화실(등록문화재 제171호). 골목길에서 닫힌 대문 위로 살짝 보이는 한옥 기와만 봐야 한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청전은 근대 한국화의 대가로 ‘청전양식’이라는 독창적인 화풍을 남겼다.

배화여고 별관 뒤 암벽에 ‘필운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조선 선조 때의 재상 백사 이항복이 살았다. 세종마을의 전통시장인 통인시장은 서민들의 애환을 살갑게 느껴보는 곳이다. 통인시장은 일제강점기인 1941년 지금의 자리에 공설시장이 설립되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통인시장 서쪽 출입구의 맞은편 골목길은 9번 마을버스 종점이 있는 옥인공원(옛날 옥인아파트 자리에 조성)으로 이어진다. 그 골목 안에 화가 박노수 가옥과 시인 윤동주 하숙집 터가 숨어 있다. 서울농학교, 서울맹학교 맞은편의 우당기념관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과 형제들(건영, 석영, 철영, 시영, 호영) 및 애국지사들을 기념하는 곳이다. 우당과 형제들은 전 재산을 처분해 막대한 독립운동 자금을 만든 뒤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군을 양성했다.

세종마을 탐사 여행의 대미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올라 그의 시를 음미하면서 마을 전체 풍경을 조망하는 것으로 끝난다. 공원에는 윤동주의 대표 작품인 ‘서시’를 새긴 시비가 세워져 모두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항일 문학가 이상화 시인의 대구 계산동 고택으로 가는 골목에는 시구와 그림이 있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항일 문학가 이상화 시인의 대구 계산동 고택으로 가는 골목에는 시구와 그림이 있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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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산동 청라언덕에서 시작해 종로 2가 진골목에 이르는 약 2㎞ 구간은 대구 근대 문화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코스다. ‘대구의 몽마르트르’라 불리는 청라언덕은‘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라는 노래 ‘동무 생각’의 무대가 된 곳이다. 계성학교 재학 시절 신명학교 여학생을 본 뒤 한눈에 반해 사랑을 키웠던 박태준(1900~1986)이 훗날 시조 시인 이은상(1903~1982)에게 첫사랑의 추억을 털어놓다가 곡을 만들었다. 이은상이 그 곡에 가사를 붙여주면서 국민 가곡 ‘동무 생각’이 탄생했다고 한다.

3·1 만세운동 계단.
3·1 만세운동 계단.
언덕에는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예쁜 집이 서 있다.1910년쯤 지은 ‘선교사 챔니스 주택’(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5호)이다. 미국인 선교사들이 그들의 주택용으로 지어 살았으나 지금은 의료박물관으로 사용된다. 청라언덕에서 대구 제일교회 옆으로 이어지는 계단 길은‘3·1만세운동길’이라 불린다. 1919년 1000여명의 학생이 이 길을 통해 서문시장으로 나가 독립만세를 외쳤기 때문이다. 계단 양 옆에 3·1만세운동 당시의 사진들이 걸려있다.

3·1만세운동길을 내려와 길을 건너면 고딕식 붉은 벽돌로 지은 계산성당과 만난다. 계산성당 바로 옆이 약전골목이다. 조선 효종 때부터 봄과 가을로 나눠 약령시가 열렸던 곳으로 100곳 가까운 약업사와 한의원이 모여 있다. 약전골목의 내력을 알려주는 건물은 대구제일교회다. 1898년 남성정교회로 처음 설립된 뒤 1933년 벽돌 교회당을 짓고 지금의 ‘제일교회’로 이름을 바꿨다.

진골목 역시 꼭 찾아봐야 할 곳. 진골목은 ‘긴 골목’이라는 뜻. 경상도에서는 ‘길다’를 ‘질다’로 발음하기 때문에 ‘긴 골목’이 ‘진 골목’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름만큼 길지는 않다. 100m 남짓 될까. 한때 이곳에 대구의 내로라하는 부자들이 모여 살았다. 대구 최고의 부자였던 서병국을 비롯해 코오롱 창업자 이원만, 정치인 신도환, 금복주 창업자 김홍식이 살았다.

진골목에서 옛 모습을 지키고 남아있는 집이 정소아과다. 붉은 벽돌담이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진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정 소아과의원’이라는 간판을 단 2층집을 만날 수 있다. 현존하는 대구 최고(最古)의 양옥건물이다. 1937년 화교건축가 모문금이 설계해 건립한 주택인데 유럽의 영향을 받은 일본식 건축풍이라고 한다.
우월선 선교사 사택.
우월선 선교사 사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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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극장 내부.
광주극장 내부.
광주 근대문화투어는 선교 문화기행이라고 할 수 있다. 목포와 군산을 거쳐 1900년대 초반에 광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선교사들이 터를 잡은 곳이 지금의 양림동이다.

탐방은 사직도서관 앞 선교기념비에서 시작한다. 이곳은 배유지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벨이 처음 광주에서 예배를 드린 곳이다. 배유지가 이곳을 터전으로 광주 최초의 교회와 기독병원, 수피아학교 등을 세움으로써 근대 교육과 의료의 출발점이 되었다. 사직도서관에서 오르막길을 조금 오르면 호남신학대학교다. 교문을 들어서면 오른편에 광주를 대표하는 시인 중 한 명인 김현승의 시비가 나오고 그 뒤로는 산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오르면 광주에서 선교활동을 펼쳤던 배유지 부부와 오기원 등 22명의 선교사가 묻힌 묘가 있다.
광주 북동천주교회. 한국관광공사 제공
광주 북동천주교회. 한국관광공사 제공
선교사묘원에서 산길을 내려오면 우월순 사택이 보인다. 제중병원장이던 우월순 선교사는 이곳에서 장애우와 고아를 위한 고아원 사역을 시작했다. 별장처럼 근사한 아름다운 회색 벽돌 기와집이 인상적이다. 수피아여고 정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배유지기념예배당이다. 이 건물은 정면에서 보면 2층이고 뒷면에서 보면 단층으로 보인다. 건물 위층은 예배실, 아래층은 선교부 아이들의 학교로 사용됐다. 광주 3·1만세운동 기념 동상 건너편의 수피아 옛 강당은 근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광복 직후에는 미 군정청이 1947년 5월까지 점유했고, 6·25전쟁 때에는 북한군이 사용하기도 했다.

학교 안쪽으로 들어가면 네덜란드식 벽돌쌓기로 지은 수피아홀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수피아홀이 건축되면서 배유지 선교사의 임시 사택에서 시작된 광주여학교가 수피아여학교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광주 여성교육의 요람이 됐다.

수피아여고에서 사직도서관 아래로 내려가면 조선후기 양반집인 이장우 가옥(옛 정병호 가옥)과 최승효 가옥(옛 최상현 가옥)이 있다. 최승효 가옥은 개인 생활공간이라 집안을 돌아볼 수 없다. 이장우 가옥은 1899년 정병호가 지은 것을 1965년에 나주 장신대 설립자인 이장우가 사들였다. 전통한옥에 다소 일본식의 편의성이 가미된 듯한 ㄱ자형 안채와 일본식 정원이 인상적이다.

양림교회 옆 오기원기념각은 1909년 순교해 선교사묘원에 묻힌 오기원을 기념해 그의 친지들이 성금을 모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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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개교 형태로 복원 된 영도다리.
도개교 형태로 복원 된 영도다리.
부산은 최근 4개의 골목투어 코스를 만들었다. 그중에서 1코스인 영도다리를 건너는 코스와 3코스인 이바구길이 가장 볼 만하다. 1코스인 영도다리를 건너는 코스는 선박 수리업체들이 밀집한 남항에서 시작된다. 영도다리를 경계에 두고 북항과 나뉘며, 항구도시 부산 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다. 6·25전쟁 때 피난민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생선을 잡아 팔던 자갈치시장과 건어물 시장이 있고, 조선 산업이 최초로 시작된 곳이다. 최근 영도다리는 다리를 들어올리는 도개교 형태로 복원돼 부산의 명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다리를 건너 조선소 골목으로 들어서면 선박부품 업체들이 모여 있다. 배를 수리하기 전에 부식된 페인트를 벗겨내는 ‘깡깡’이라는 고된 작업을 하는 할머니들이 아직도 남아 있고 드럼통과 고물들을 만나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1960년대 형성된 남항시장과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봉래시장은 전통시장의 면모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어묵 제조업체인 삼진식품의 부산어묵전시장도 볼거리다. 어묵은 1950년대 일본에서 제조 기술을 배워 온 박재덕 씨가 봉래시장 입구의 판잣집을 빌려 처음 만들기 시작했으며, 3대를 이어온 봉래동 공장을 전시체험장 형태로 리모델링해 2013년 새롭게 문을 열었다.

3코스인 이바구길은 부산 외국인서비스센터에서 시작된다. 부산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근대건축물인 옛 백제병원은 중국집에서 예식장으로 바뀌면서도 지금까지 끈질기게 살아 남았다. 옛 백제병원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남선창고터에 이른다. 1900년 함경도에서 배로 물건을 싣고 와서 보관하던 최초의 물류창고로, 초기에는 북선창고라 불렸으며 경부선을 통해 서울까지 물건을 운반하기 전에 보관하는 곳이었다. 2009년에 철거돼 지금은 붉은 벽돌로 쌓은 담장만 남아있다.

초량교회
초량교회
남선창고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초량교회는 1893년 선교사 애덤슨이 부산 최초로 세운 교회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진원지이기도 했다. 부산골목투어 제3코스의 정점은 168계단이다. 산복도로에서 부산항까지 가장 빨리 내려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계단의 수가 168개이며 계단 아래에 원래 3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최병일 여행·레저 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