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에 대한 산업현장의 체감도가 낮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현장에선 여전히 기업의 발목을 잡는 ‘오랜 족쇄’들이 풀리지 않고 있어서다.

이른바 ‘고무줄 잣대’가 대표적이다. 기업 활동에 영향을 주는 규제가 법률로 정해지지 않은 탓에 자의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다. 기부채납(공공기여)이 그런 사례다. 기부채납은 대규모 개발사업을 맡은 민간사업자가 학교 도로 공원 녹지 등을 만들어 국가, 지방자치단체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개발사업에 따른 이익 중 일부를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내놓아야 한다는 게 이 제도의 도입 취지다. 그런데 현행법 어디에도 기부채납을 할 때 민간사업자가 얼마만큼을 부담해야 하는지 명시돼 있지 않다. 지자체마다 부담률이 제각각이다.

그렇다 보니 작년 충북 청주시의 아파트 건설업체는 지자체로부터 전체 개발면적의 54%를 기부채납으로 내놓을 것을 요구받았다. 금액으로는 약 3300억원을 원래 개발사업과 무관한 기반시설 공사에 써야 하는 셈이다. 일부 지자체에선 개발면적의 최대 80%가량을 기부채납으로 요구하는 일도 있다. 이 같은 ‘고무줄 잣대’ 때문에 기업 부담이 가중된다는 지적이 일자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1월 각 지자체에 ‘기부채납 부담률 가이드라인’을 보냈다. 민간기업의 부담률을 전체 개발면적의 최대 25%까지로 하자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가이드라인은 강제성이 없는 단순한 권고안이어서 실효성이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고무줄 잣대’는 또 있다. 상수원 보호구역 주변의 공장입지 규제다. 현행법률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부터 일정 거리 이내에는 공장을 지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정 거리’가 얼마냐는 한강유역환경청, 낙동강유역환경청, 영산강유역환경청 등 5개 환경청에서 정한다. 그런데 환경청마다 적용하는 거리 기준은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공장 신·증설이 안되는 거리를 A환경청은 상수원보호구역으로부터 10㎞ 이내로 보지만, B환경청은 7㎞ 이내로 본다는 얘기다. 환경영향평가 대행업체 관계자는 “환경청마다 다른 건 기본이고, 같은 환경청 소속 공무원 사이에도 기준이 다르다”며 “명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투자계획을 짜는 기업 입장에선 불확실한 리스크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허가 담당기관이 흩어져 있는 것도 문제다. 비슷한 인허가인데도 두서너 기관을 거쳐야 하는 이른바 ‘뺑뺑이 규제’들이 아직도 많다. 자동차 배출가스 인증·검사가 그런 사례다. 배출가스를 검사하면 해당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연비를 한꺼번에 측정할 수 있다. 그런데 배출가스를 검사하는 곳은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 산업부 산하 에너지관리공단, 국토부 산하 교통안전공단 등이 나눠 맡고 있다. 환경부는 이산화탄소 배출량만, 산업부는 연비만을 측정한다. 국토부는 부품 안전검사 차원에서 별도로 배출가스 검사를 한다. 기업 입장에선 똑같은 배출가스 검사를 세 번이나 받아야 하는 셈이다. 이런 일은 각종 인증, 인허가와 관련해 부지기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