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혁연출가
오세혁연출가
공연시간 20여분을 남겨두고 혜화역 지하철에 내려서 뛰었다. 숨이 밖으로 밀치고 올라왔다. 8분이 남아있었다. 음료수를 한 병 사서 한 번에 목에 털어 넣었다. 긴 숨을 몰아쉬고는 게릴라 극장이 위치한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관객들 수십 명이 입장 순서를 기다리면서 웅성거리고 모여 있었다. 오세혁 연출의 '늙은 소년들의 왕국' 연극이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관객이 몰렸다. 극장 매표소 앞 나무의자에 이윤택 연출가가 앉아 있었다.

그가 만든 연극 ‘피의결혼’은 콜롬비아 연극축제로 날아가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다. 쉴 틈이 없는 연출가다. 그가 일어서더니 매표소 안으로 들어가 한국공연예술연구소에서 발행된 ‘셰익스피어와 한국연극’을 들고 나왔다. 웃으면서 책 몇 권을 손에 쥐어준다. 100석이 넘는 객석은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공연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무대는 배우들의 날 것 그대로의 놀이로 무대를 채워 넣는다. 의상은 땀으로 범벅되고 배우들의 놀이 숨소리는 격렬하다. 무서운 몰입이 놀이의 속도를 만든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밖으로 나온 관객들이 길목을 떠나지 않는다. 재밌게 노는 놀이는 함께 놀고 싶어진다.

극장 밖에 있던 이윤택 연출은 “마당극적인 이 놀이성 들이 제도권의 연극으로 진입 했다는 것이 사건입니다. 마당극은 민중정신을 담고 있잖아요. 저항적이고 강렬합니다. 그리고 놀면서 풍자를 해요. 요즘 연극은 전투적이거나 무대에서의 운동성이 약합니다. 오세혁의 연출성 들이 마당에서 무대문화로 들어오면서 이 두 가지를 다 갖춘 겁니다. 마당의 연극성이 현대연극적인 구조로 만나진겁니다. 아주 재밌죠. 보는 관객도 흥겹잖아요. 독특한 형식을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어요.” 오세혁 연출과 마주 앉았다. 얼굴표정이 희극적이다. 그가 직접 쓴 작품에 배우, 작가, 그리고 연출까지 하는 특이한 연출가다. 그가 만든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 문패도 범상치 않다.

○작품이 너무 만화적이다. 리어왕과 돈키호테를 통해서 시대에 무엇을 던지고 싶었나.

목소리에 속도를 줄인다. “리어왕은 자기왕국을 잃고 떠도는 인물이고, 돈키호테는 자기만의 왕국을 찾아서 떠도는 인물인데요. 두 분이 이상적인 것만 꿈꾸고 뭔가 높은 데서만 슬픔과 모험을 하는데요. 이들한테 백성이 한명이 있을 때 버림받은 노인들이 오히려 몸을 던져 인간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너무 놀이로 가다보니까 연출가의 장점인 것 같기도 하고, 어수선 하다는 느낌도 든다. 작품의 특성상 정리를 안 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제가 마당극을 하다보니까 현장 돌아다니면서 하거든요. 마당은 밖에서 한다는 건데 뭔가가 정제가 되고 깔끔해지면 관객들이 눈을 돌리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마당놀이 특성상 어찌됐든 관객들한테 계속 들이대는 역동적인 것들이 필요해요. 극장이라고 해서 극장 구조에 맞게 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하는 대로 했던 것 인데 좀 어수선하게 보인 부분들도 맞는 것 같아요.”

○‘늙은 소년들의 왕국’이 몇 번째 작품이죠.

“저는 2005년도에 극단을 만들고 나서 굉장히 많이 다작을 했어요. 극단 작품으로는 75회 정도의 공연작품이 되는 것 같은데요.” 단기간에 그렇게 많이 했나. “ 5분, 1시간 정도 되는 작품도 많습니다. 마당극 특성상 공연이 바로 되는 경우도 많아요. 1시간 이상 되는 작품으로는 20번째 정도가 될 것 같아요.” 오세혁 연출가 작품의 특징은 웃음이 빠지지 않는다는 거다. 특별한 의미가 있나. 그가 나를 올려다본다. “ 우리극단은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얘기를 가장 재밌게 하자는 거거든요. 웃게 되면 경계를 푸는 게 있거든요. 일단은 웃겨놓고 나서 마지막에 한번씩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때 더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리어왕과 돈키호테를 꺼낸든게 아이디어가 좋다.

“제가 2011년에 신춘문예 됐어요. 우리극 연구소로 이윤택 선생님 햄릿 강의를 들으러 간적이 있어요. 그때 이 선생님이 비극의 대명사는 셰익스피어고 희극의 대명사는 세르반테스인데 같은 날 죽었다. 그런데 비극을 쓴 셰익스피어는 행복하게 죽었고, 희극을 쓴 세르반테스는 비극처럼 길에서 객사를 했다고 해요. 2년 동안 제가 계속 그 생각을 했어요. 리어왕과 돈키호테가 만나는 것으로 해야겠다고 늘 생각하다가 셰익스피어 페스티발을 준비하면서 이 얘기를 쓰게 됐어요.”

○연극을 감상하는 것은 주관적이다. 극단 작은 신화의 놀이성, 이윤택 연출이 수용하고 있는 현실적이 시선들이 비벼져서 요즘의 트렌드에 맞는 연극적 문법들이 만들어진 것 같다. 좋게 봤다.

“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윤택 선생님을 2010년에 뵙고 나서 옛날 작품 들고 많이 읽어봤고 작품들도 많이 봤어요. 저한테는 없었던 것은 사실 저는 잘 놀고 가볍게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이 선생님은 무거운 것을 제대로 던지는 무게가 있는데 그것을 담고 싶은 마음이 있고요. 그것을 그냥 구현한 것은 아닌데 좋은 연극의 문법들을 담고 싶어 하는 것들이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연극문법이 다르다. 그것을 뒤집어서 유쾌하게 가니까 다르다. 놀이성만 강조 하다보니까. 배우들의 날것이 그대로 들어난다.

“정확하게 보신 건데요. 저랑 출퇴근을 같이 하면서 살아가는 배우들이거든요. 극단에 들어오는 과정들이 연기를 전공해서 온 것이 아니라 연기를 하고 싶은데 자신이 없어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용기를 내서 연극 문을 두드린 경우가 많아요. 어떻게 보면 완성이 되지 않는 배우들이인데 이들이 뭔가를 꾸미고 더 덧붙이려고 하다 보면 되지도 않고요. 차라리 홀가분하게 우리는 다 부족하니까 날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집단 에너지로 가자. 이렇게 밀고 가는게 있어요. 이게 성숙해지고 완성이 되면 그때 뭔가가 다른 것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극단 ‘정의로운 천하극단’의 배우들은 놀이로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낸다. 초월적인 몰입과 집중적인 놀이가 형성 됐을 때 가능하다. 배우들은 높고 낮음이 없이 이 놀이 속에서 다양한 균형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이 극단만이 할 수 있는 연극문법이다.

○배우들은 감정은 담지 않고 뱉어 내는 것이 많다. 담지 않고 풀어내니까 놀이의 속도가 붙고 이야기를 재밌게 끌고 간다.

“이번 작품은 특별히 그렇고요. 다른 작품보다 더 특별하게 달려간 것이 있어요. 배우들이 힘들어했다. 우리 극단이 안산의 극단이다. 세월호 때문에 안산 시민 모두가 힘들어 한다. 배우들은 연습하면서 현실은 참혹한데 연극을 웃으면서 하는 것이 괴롭고 마음이 착잡하다고 해요. 우리는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고 무대에서 존재를 해야 한다. 용기가 내자고 했어요. 이번 연극을 통해서 자기생각을 그대로 표현하고 그대로 뱉자. 이번 작품이 특히 그렇게 된 것은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대한 의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예전에 대학로 광장에서 쌍용 분들이 집회를 했는데 그곳에 꽃밭을 심은 적이 있었어요. 전 그때 그 꽃들이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고, 약간 무섭게 다가 왔어요. 그 땅에 존재하고 그 자리에 있어야 될 분들을 밀어내고 꽃밭을 만든 건데요. 그 분들의 마음이 무겁게 다가왔고,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 죽음도 현재시선으로 봤을 때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죠.

“그렇죠. 그 자리는 원래 있어야 될 분들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 소수의 분들의 목소리가 자꾸 땅에 묻히고 있으니까 현실에서 외쳐대는 것은 힘들지만요. 극장에서 나마 한번 크게 소리를 치고 싶었어요. 그런 소리의 울림을 담아내는 것이 연극이고요. 배우들도 그런 것을 원할 것 같아서 마지막 까지 몸부림을 치면서 소리라도 질러보자 한 겁니다.”

○이 시대의 돈키호테나 리어왕은 어떤 존재로 현실로 다가와야 할 것 같아요.

“이들이 꿈꾸는 것은 크고 높은데 있거든요. 자기 왕국, 꿈꾸는 왕국. 지금 세상도 그렇고 너무 큰 것을 바라지 말고 그냥 한명이 소중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을 잘 보살펴 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하고요.. 서로를 외면하는 세상은 잔혹하잖아요. 따뜻한 사화 더 필요하죠. 저 부터라도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속도감 있는 웃음을 준비하나.

“10년 전부터 얘기 해왔던 건데요. 우리극단은 가장 의미 있는 것을 가장 재밌게 풀어내자는 겁니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이 방식대로 할 겁니다. 이전까지는 짧은 호흡과 발랄함 이였다면 이제는 묵직한 무게감을 찾고 싶은 것이 있어요. 역동적인 것이 필요하다. 늘 하던 대로 우리극단은 쭉 전진입니다.” 그와 함께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오세혁 연출가가 배우들을 향해 몇 마디를 던졌다. 웃음이 터졌다.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의 웃음소리는 특별하다.

공연 리뷰/김건표(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뮤지컬·공연예술 평론/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