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대~한민국" 함성을 듣고 싶다
인간에게는 ‘집단편향(in-group bias)’이라는 심리적 성향이 있다. 한국 역사 속의 당파싸움은 전형적인 집단편향의 좋은 사례다. 이는 끼리끼리 뭉치는 현상이다. 사실을 알고 진실을 규명하기보다 상대 집단에 속한 사람이 하는 것은 무조건 틀리거나 잘못한 것으로 몰고 간다. 어떤 사실이 발견되고, 아무리 진정성을 갖고 호소해도 내 편인가 아닌가에 따라 옳고 그름이 결정된다.

한국은 유독 집단편향이 강한 사회다. 집단편향은 눈과 귀를 멀게 한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 한국 사회에 집단편향이 얼마나 깊이 뿌리내렸는지 알 수 있다. 이 참사를 이용해 자신들이 싫어하는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가를 증명하려고 한다. 특히 현 정권과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은 “옳다구나. 너 잘 만났다”고 하는 식이다. 마치 모든 문제가 현 정권에서 갑자기 발생한 것처럼 주장한다. 이들에게 대통령은 무한책임의 대상이다.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편의적 해석도 불사한다. 규제완화를 반대하던 집단은 규제완화가 문제라고 한다. 화물을 과적하고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으며, 어린 생명들을 뒤로 한 채 배를 버리고 도망간 선장과 선원의 무책임이 어떻게 규제완화와 관계가 있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사이비 종교집단까지 이기죽거리고 있다. 말도 안되는 논리로 자신들을 정당화하며 국가를 부정하고 법 집행을 막고 있다.

이 불행한 사회현상에서 확실한 것은 한국에서 국가 개념이 상실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정치집단, 관료집단, 지역집단, 종교집단 간의 투쟁장이 됐다. 애국이라는 단어는 역사의 메아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법 집행조차 어렵게 됐다. 집단이익과 집단편향이라는 두 망국의 축이 한국을 침몰시키고 있다.

사회의 분열은 국력의 약화로 이어진다. 이런 식이면 한국은 앞으로 심각한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국가가 통솔력을 상실하게 된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이해집단 간 갈등 속에서 국가를 이끄는 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경제와 사회, 안전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없다. 국회에서는 여야가 싸우고, 정부 부처는 부처대로, 사회에서는 수많은 이해집단이 서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투쟁하기 때문이다. 언론, 시민단체도 걱정스럽다. 정부가 무엇을 하든 언론, 시민단체에는 이것이 음모로 보인다.

정부의 무기력증은 시간이 갈수록 증세가 악화될 것이다. 정부의 무기력은 경제력 약화로 이어진다. 정부가 힘을 잃으면 경제는 더욱 나빠지고 장기침체 길로 접어들 것이다. 그러면 한국도 일본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 경기침체 장기화와 민족 자긍심의 상실은 국수주의적 정치지도자를 출현하게 만든다. 일본의 현재 정치지도자나 예전 군국주의자의 집권도 같은 과정을 거쳤다. 독일에서 나치가 득세한 것도 마찬가지다. 추진력을 상실한 정부, 경기침체 장기화, 실업과 빈곤에 따른 절망감, 집단 간의 투쟁은 선동적이며 국수주의적 정치인에게 절호의 기회가 된다.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일어났으나 결과는 똑같이 그들 국민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 주었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애국이지 국수주의가 아니다. 애국은 개인이익 혹은 집단이익보다 국가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즉, 희생과 이타적 사고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국수주의는 독선과 증오가 바탕이다. 자신들의 집단이 선(善)이고 다른 집단은 악(惡)이 된다. 한국과 같이 집단편향이 강한 사회에서 국수주의적 지도자가 출현하면 매우 불행한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

언제쯤 한국 국민은 오만과 편견이라는 패망의 옷을 벗어 던지고 화합과 단결로 수놓인 희망의 옷을 입을 수 있을까? 월드컵 당시 온 국민이 한마음이 돼 외치던 “대~한민국”의 함성이 그립다. 이제 집단편향의 족쇄를 풀고 희생과 용서와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국민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다.

유지수 < 국민대 총장·경영학 jisoo@kookmi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