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최형섭 박사가 그립다
1965년 5월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다. 당시 한·미 공동성명문 말미에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문안 하나가 들어갔다. “박 대통령은 한국의 공업기술 및 응용과학연구소 설치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과학고문을 한국에 파견하겠다는 린든 존슨 대통령 제의를 환영했다.” 존슨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다고 하자 박 대통령은 연구소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던 것이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판에 연구소라니. 당시 그 의미를 알아차린 사람이 얼마나 있었겠나. 오늘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이렇게 탄생했다.

“KIST는 국가 미래의 등불”

손뼉도 맞아야 소리가 난다고 했다. 대통령 뜻이 아무리 좋아도 받쳐주는 이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여기서 소신이 뚜렷했던 한 과학자가 등장한다. KIST 초대 소장, 최장수 과학기술처 장관(7년6개월)을 역임한 고(故) 최형섭 박사다. KIST가 어제 최 박사 10주기 추도식을 열었다. 척박한 이 땅에 연구환경을 조성하고 해외 인재를 끌어들인 그의 열정을 잊지 못해서일 것이다. 최 박사는 대덕연구단지 등 한국 과학기술의 터전을 닦은 개척자였다.

최 박사 묘비명에 새겨진 연구자 덕목은 지금도 연구자들을 숙연하게 한다. 그의 회고록 일부다. “연구자는 지나치게 부귀영화에 집착해선 안된다. 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직책에 충실해야 한다. 연구 자체가 생활이어야 한다. ‘자기가 얼마나 알고 있느냐’를 자랑하기 전에 ‘자기가 얼마나 모르는 게 많으냐’를 반성해야 한다. 연구기기 탓을 해선 안된다. 허위와 과장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최형섭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

KIST 한 해 예산 10억원을 놓고 경제기획원과 밀고당기던 시절이다. 오늘의 한국을 일궈 낸 건 당시 연구자들의 의욕과 열의였다. 한 해 연구개발(R&D) 예산이 17조원을 넘는다는 지금, 그런 연구자가 얼마나 있을까. 설비나 돈보다 연구 자세가 중요하다는 최 박사 말이 따갑게 들린다.

창조경제? 초심으로 돌아가자

과기처 장관 재임 시절 그에게 부처 이기주의란 없었다. 오히려 과기처가 과학기술의 모든 걸 관장해야 한다는 고식적 관념을 벗어나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과학기술 행정의 원칙은 ‘조정’과 ‘지원’이지 ‘조정’과 ‘통제’가 아니라는 것도 그의 주장이었다. 창조경제를 외치는 지금, 현장에서는 연구소도 대학도 세월호처럼 침몰하고 있다는 얘기들뿐이다. 도대체 뭐가 잘못됐나.

2001년 한국경제신문 창간 37주년을 맞아 최 박사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인터뷰했을 때다. “요즘 연구소가 위기라는데?” “KIST 출범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가장 큰 차이는 연구의 자율성이 사라졌다는 거다. 돈 몇 푼 주고 간섭은 무지막지하다면 누가 연구하겠나. 이런 현실에선 연구보다 감투를 더 중시하고 모럴해저드가 벌어지는 건 당연하다.” 인터뷰 말미에 중국이 쫓아오는데 어쩌면 좋으냐고 물었다. 최 박사는 기다렸다는 듯 “과거처럼 ‘연구’ 따로 ‘생산’ 따로가 아니라 연구소가 생산 공장이 되는 기업 토대를 만들면 된다”고 했다.

창조경제가 뭐 별건가. 영국이다, 이스라엘이다 남들 배우겠다고 돌아다니지만 어쩌면 우리 자신이 걸어온 길에 정답이 있을지 모른다. 창조경제가 아니라 그 무엇인들 기본이 달라지겠나. 초심으로 돌아가자.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