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고나 화재가 났을 때, 한국의 방송은 거의가 경찰 또는 소방 당국이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 중”이라는 식으로 보도한다. 그런데 일본 방송을 자주 접하는 지인의 말에 따르면, 일본의 방송은 “좀 더 상세한 내용을 조사 중”이라고 보도한다고 한다. 이는 사소한 차이 같지만 두 나라 방송 보도의 태도에서 커다란 차이를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목격자 없이 지나간 사건의 원인을 파악하는 일에 정확한 사고원인을 당연히 알 수 있는 것처럼 말할 수는 없다. 잠정적인 가설을 세우고, 증거자료를 모아 그 가설의 타당성을 추정할 뿐이다. 먼저 해야 할 일 또는 할 수 있는 일은 좀 더 의미 있는 증거자료를 성실하게 찾아보는 것이며, 이런 단계가 성실히 수행됐을 때 비로소 타당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된다.

한국 방송의 보도 태도는 비과학적일 뿐만 아니라, 증거 자료를 수집하고 조사하는 일보다는 결론을 서둘러 내리는 것 같은 인상이 들게 한다. 더욱이 충분히 증거를 수집해서 결론을 내린다 해도 가설검증에는 오류가 따를 수 있다. 따라서 기자는 수집된 증거에 근거해서 객관적인 판단이 되도록 애써야 하며, 결론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조심성이 있어야 한다. 방송 보도는 시간과의 싸움이므로 한정된 시간 내에 이런 일을 해내야 하는데, 이를 ‘객관화 능력’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객관화 능력은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일을 자신의 주관에 따르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을 수집해 균형잡힌 판단을 내리는 능력으로써, 이는 과학적 사고와 닮았다. 과학자들은 현상을 연구하고, 새로운 지식을 구축하거나 이전의 지식들을 모아 통합할 때 관찰이라는 수단을 사용한다. 오직 수집된 자료(관찰)만이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심판관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자유낙하하는 물체에 대한 종래의 가설, 즉 무거운 물체는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는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관찰을 통해 보여줬다. 이런 과학적 사고야말로 중세의 오랜 정체를 깨고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을 거쳐 오늘날의 산업사회를 도래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 한국의 방송은 객관화 능력이 부족함을 드러냈다. 뉴스를 보도하는 아나운서는 해난전문가도 아니면서 어떤 구조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결론 내서 보도했으며, 사법 기관도 아니면서 수많은 법적 결론을 예단하는 듯한 보도를 내보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사건이 아무리 슬프고 안타까워도, 누구를 단죄해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균형잡힌 취재를 해서 그들의 입장은 무엇인지 자료를 수집하는 일에 더 힘을 기울여야 했다. 그런 다음 차분히 가능한 가설에 따라 잠정적이고 조심스러운 결론을 제시해야 한다. 방송이 성큼성큼 주관적인 판단을 앞다퉈 내놓는다면 이는 보도가 아니라 선동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이런 예는 몇 해 전 광우병 보도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났다.

실상 객관화 능력의 결여는 한국 방송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방송의 고객인 사회 전체가 객관화 능력이 떨어지니 조급하게 결론을 제시하는 방송이 먹혀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객관화 능력, 나아가 과학적 사고가 결여된 사회는 조그만 선동에도 부화뇌동하게 돼 세월호와 같이 언제 넘어갈지 모르는, 토대가 매우 불안정한 사회라고도 할 수 있다.

방송이 앞장서서 객관적인 보도가 되도록 하는 노력을 통해 우리 사회 전체의 객관화 능력이 한 단계 높아질 수 있었으면 한다. 그래야만 현재 우리가 이룩한 경제적 성취에 어울리는 정신적 성숙을 이룰 수 있다.

문근찬 < 숭실사이버대 교수·경영학 kcmoon@mail.kcu.a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