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의 인물화와 정물화는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땀과 정열의 산물입니다. 함께 작품을 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워요.”(장지원 화백·67)
오는 29일까지 경기 양평 류미재갤러리에서 ‘사랑과 우정의 변주곡’ 전을 여는 부부 화가 구자승·장지원. 두 사람은 “한 지붕 아래에서 40여년을 부대끼며 때로는 치열하게 경쟁하며 따로 또 같이 예술혼을 불사르고 있다”며 서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71년 부부로 인연을 맺은 위에 또 한 겹의 ‘화연(畵緣)’을 쌓은 이들에게 미술은 가족의 분위기를 살리는 에너지이자 위안이다.
충북 장호원에서 같은 작업실을 쓰고 있는 두 사람은 “온종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작업의 세계만큼은 동화되지 않도록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고 했다.
“아내가 곁에서 같이 고민하고 같이 사랑하면서 같은 길을 걸어왔기에 예술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구 화백 말에 장 화백은 “평생 캔버스 앞을 지킬 수 있게 해준 남편의 사랑에 항상 감사한다. 예술은 사랑을 먹고 자라는 것 같다”고 화답했다.
두 사람은 서로 닮은 데가 많다. 성격도 비슷하고, 그림을 그릴 때 집중하는 모습도 많이 닮았다. 장 화백은 붓을 잡은 지 50년째인 구 화백에 대해 “드라마틱한 미감을 가진 대범한 화가”라고 칭찬했다.
‘정물화의 대가’ ‘인물화의 천재’ ‘누드화의 1인자’로 불리는 구 화백은 탄탄한 구성력과 밀도 있는 묘사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동안 노태우·전두환·김대중 전 대통령 초상화를 맡아 그려 주목받았다. 2010년 말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선정한 미술 부문 ‘올해의 최고예술가상’을 수상했다. 술잔과 시계, 과일, 꽃병 등의 일상적 오브제를 정선된 색상의 극사실 기법으로 묘사한 정물화는 빛에 관한 고감도 미의식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 화백은 “우리 가족에게 미술은 행복의 인큐베이터”라고 했다. “홍익대 미대 1학년 때 군대에 갔다가 복학한 뒤 학교 화실에 파묻혀 살았어요. 매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여학생과 눈이 맞아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는데 그 여학생이 지금의 아내입니다.”
장 화백은 “당시 그림에 빠져 있던 남학생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며 “그림 그리는 사람과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저 사람과는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홍익대와 미국 온타리오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장 화백은 50년 가까이 다양한 시적 이미지로 작업일기를 쓰듯이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다.
구 화백은 “꽃, 새, 나무 같은 자연의 이미지나 기호 등을 통해 신비롭고 아름다운 세계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아내의 작품은 진지한 삶의 자세가 만들어낸 결정체”라고 평했다.
두 사람은 “지금처럼 경제적인 어려움이 더해질수록 가족과 사랑에 대한 갈망은 커지게 마련”이라며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가족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을까 해서 전시회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031)774-886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