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공포지수 추락…원·달러 환율 1000원 깨지나
최근 들어 각종 공포지수가 추락하고 있다. 주식과 외환, 국채시장에서 위험성과 변동성을 나타내는 빅스(VIX)와 시빅스(CVIX·Currency Volatility Index), 무브(MOVE·Merrill Option Volatility Estimate) 지수가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제는 공포지수가 아니라 안전지수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가장 큰 이유는 세계적으로 유동성(돈)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제로(0)금리와 양적완화로 상징되는 울트라 금융완화 정책으로 절대적으로 돈이 많아졌고, 돈이 부족하더라도 거래비용(이자) 없이 언제든지 빌릴 수 있어 각종 부도 가능성이 떨어졌다. 이르면 이달부터 유럽중앙은행(ECB) 회의를 계기로 ‘마이너스 금리제’까지 도입될 예정이다.

제도적으로 미국의 단일금융개혁법인 ‘도드-프랭크 법안’과 양대 위기 이후 보다 강화된 ‘바젤Ⅲ’ 시행 이후 자기자본거래 금지, 복잡한 파생상품 규제, 레버리지 투자가 일정 범위 내로 제한된 것도 원인으로 가세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하고 투명하고 원리원칙에 충실한 금융행위와 금융거래만 통하고 투기행위는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공포지수 추락…원·달러 환율 1000원 깨지나
인터넷·모바일의 발달로 각국 금융시장 통합이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것도 공포지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된 시대에 각 국가는 ‘국가(country)’가 아니라 ‘주(state)’다. 세계 어느 곳에서 위험요인이 발생하면 곧바로 제3자가 개입하거나 기대가 형성돼 더 이상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과 같은 지정학적 위험이 증가하더라도 주식시장에서 반응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포지수 추락으로 금융시장과 행위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종전의 위험성과 변동성에 익숙한 참여자들은 ‘시장이 더 이상 재미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용하다. 위험이 없다 보니 과감한 금융행위(risk on/risk off)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무기력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 모른다.

투자자들도 혼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안전자산과 위험자산 간 경계선이 무너지고 있다. 가장 안전하다는 미국 국채와 리스크가 한번도 검증되지 않은 코코본드(COCO bond·조건부자본증권), 금융위기 주범인 대출채권 담보부증권(CLO)이 함께 인기 절찬리에 판매 중이다. 같은 안전자산이라도 미국 국채값은 오르지만 달러화와 금값이 떨어지는 현상이 공존하고 있다.

금융사와 금융상품, 심지어 금융인 간하향 평준화 현상이 자리잡은 지도 오래됐다. 어느 금융사에서 금융상품이 나오든 수익률이 고만고만하다. 이 때문에 금융사 임직원이 받는 높은 연봉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금융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갈수록 규제가 강화되는 것이 현실이다.

공포지수가 추락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투자자와 기업을 비롯한 경제주체들이 미래에 대한 위험과 모험을 감수하려는 행위가 줄어들 때 잠재성장 기반이 약화된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고 있고,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다’는 말이 자주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표적 경제활력지표인 통화유통 속도와 통화승수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런 때에는 경기가 회복하더라도 물가가 올라가지 않는 ‘디스인플레이션’이나 오히려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국면이 나타난다. 종전의 이론으로는 쉽게 이해되는 않는 현상이다.

양대 위기의 아픔이 채 가시기 전에 역사적으로 저점에 도달한 위험성과 변동성을 우려하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극단적으로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현상이 동시에 나타날 경우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처럼 정책적으로 쉽게 대응하기 어려운 또 다른 형태의 위기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포지수 추락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일본중앙은행은 울트라 금융 완화 기조를 지속해 나갈 뜻을 재차 강조하고 있고, ECB는 조만간 추가 금융완화정책(정책금리 인하, 양적완화 등)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조가 특정 시점에 바뀔 때에는 위험성과 변동성이 다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기 이후 위험성과 각종 가격변수 간 상관관계를 추정해 보면 주가와는 ‘부(負)’, 달러화와 국채값과는 ‘정(正)’으로 나온다.

미국의 금리인상 등과 같은 특정 사건을 계기로 위험성과 변동성이 재확대되면 증시는 조정되고 달러화와 국채값은 강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국내 외환시장에서 1000원이 붕괴될 위험에 놓여 있는 원·달러 환율도 그때는 의외로 크게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