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은 국내 ‘캠퍼스 기금’ 역사에서 기억할 만한 해다.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을 개정, 기금의 절반까지 주식 등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투자할 때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법 등을 포함한 가이드라인까지 제시됐다.

주식형 펀드 등에 속속 유입되던 대학기금은 1년 만에 은행창고로 돌아갔다. 이듬해 나타난 금융위기가 결정타였다. 위험자산 투자는 금기가 됐다. 경희대 한양대 등은 기금운용위원회를 없앴고, 몇몇 대학 재무팀 관계자는 ‘원금 손실죄’로 직장까지 잃었다. 11조원(2012년 기준)에 달하는 대학기금이 정기예금 금리의 틀에 갇힌 배경이다.
[대학기금 운용 틀을 바꾸자] 예일大 12.5%·국내大 2.5%…대학기금, 실질 수익률 '마이너스'
장기투자 효과 누리는 미국 대학

한국경제신문이 기금 규모 1000억원 이상인 사립대 21곳과 100억원 이상인 국공립대 10곳의 2010~2012년 결산보고서를 전수 조사한 결과 주식 등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자산에 투자하고 있는 대학은 연세대, 서울대, 수원대, 경남대, 세명대, KAIST, 대구가톨릭대 정도였다. 금리 연 2.5~2.9%짜리 정기 예금과 국공채에 100% 투자하고 있는 대학도 10곳에 달하는 등 ‘원금 보전’을 내세운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외국 대학은 정반대다. 스위스계 글로벌 투자전문 회사인 파트너스그룹에 따르면 미국 대학기금의 자산 배분(작년 말)에서 안전자산인 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주식에 33%를 투자하고 53%는 부동산, SOC(사회간접자본), 자원, 사모펀드 등 대체투자 자산에 배정했다. 미국 듀크대의 대학기금만 해도 ‘배달의민족’ 등에 투자한 알토스벤처스의 주요 출자자다.

투자수익률 면에선 비교가 안 된다. 미국 예일대는 작년에 연 12.5%의 투자수익을 거뒀다. 예일대 역시 금융위기의 태풍을 피하지 못했다. 2009년 수익률은 -24.6%로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그 후에도 자산 배분의 비중은 헤지펀드를 소폭 줄였을 뿐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10년 8.9%, 2011년 21.9%, 2012년 4.7%로 수익률이 회복됐다. 덕분에 2009년 166억달러였던 기금 규모는 지난해 207억달러로 증가했다.

미국 하버드대는 한 해 수입에서 투자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39.2%에 달한다. 이준행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학기금은 주로 건축, 장학금 지급에 쓰이기 때문에 보유 기한이 길고 따라서 장기투자에 유리하다”며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연 2%대 금리의 예금에만 자금을 묶어두는 것은 사실상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생명 안 망한다는 보고서 내라”

서울 A대학 재무팀 관계자는 “미국 대학처럼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는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생명 회사채에 투자하려 했을 땐 윗선에서 삼성생명이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를 담은 보고서를 내라는 통에 포기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학은 기금 운용을 통해 ‘플러스 알파’의 수익 내는 것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자율 연 2%대 초반인데도 C여대는 특정 은행에 기금을 전액 맡기는 게 관행”이라며 “예치를 대가로 해당 은행으로부터 기부를 받는 조건이 오가곤 한다”고 말했다. 또 3개월만 쓸 수 있는 단기 자금과 3년을 묵혀둘 수 있는 장기 자금을 몽땅 예금에 집어 넣는 경우도 다반사다. 국공립대는 아예 시·도 교육청에서 위험 자산 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이런 관행은 장학금을 더 줄 수 있는 기회마저 앗아간다. 1억원을 장학금에 써달라는 기탁을 받으면 현재 시스템에선 1억원을 예금으로 넣어 연 200만원(2% 이자율 가정)의 이자 수익을 얻는 데 만족한다. 이 돈은 대학기금 운영비 등으로 활용하고, 남으면 장학금 원금에 추가돼 지급되는 식이다.

위경우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총장을 비롯해 교수, 재무팀 직원 등 어느 누구도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투자에 책임을 지길 원하지 않는다”며 “기금운용위원회를 두는 등 시스템에 의해 투자하도록 하면서 높은 수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동휘/허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