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과징금 부과 등 무리한 법 집행으로 정부가 소송을 제기한 기업과 개인에 돌려줘야 할 돈이 최소 1조7455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1조147억원)보다 72% 급증한 규모로 1년 사이에 7308억원이나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세수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 정부의 재정 여력이 더 약해져 경기 진작에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30일 국회에 제출한 부처별 ‘2013회계연도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피고로 소송을 당한 사건 중 패소 가능성이 높다고 자체 판단해 충당금으로 쌓아놓은 금액은 1조745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 1조7000억 토해낸다
이 충당금은 재무제표의 ‘장기충당부채’ 항목에 해당 회계연도 결산일(12월31일)부터 1년 내 패소 가능성이 매우 높은 소송의 소송액을 합산한 것이다. 통상 정부가 1·2심에서 이미 패소해 최종심에서 이길 가능성이 매우 낮거나 1심이 진행 중이어도 질 가능성이 크게 높다고 판단한 소송들이다. 충당금 1조7455억원은 최종 패소할 경우 정부가 물게 될 상대방의 소송비용과 이미 납부한 세금·과징금의 이자비용을 제외한 것이다. 여기에 최근 정부의 패소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최종적으로 물어내야 할 금액이 2조원을 넘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정부 1조7000억 토해낸다
패소에 대비해 쌓아놓은 충당금은 국세청 관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이른바 ‘3대 경제권력기관’에 집중됐다. 국세청이 9189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공정위 3200억원 △법무부 2558억원 △관세청 752억원 △국방부 739억원 △금융위원회 386억원 △산업통상자원부 340억원 △방위사업청 204억원 △기획재정부 38억원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국세청과 관세청이 차지하는 비중은 56.9%로 세금 관련 소송액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공정위의 과징금 관련 소송액(18.3%)이 그 뒤를 이었다.

지난 1년 사이 불어난 예상 패소액도 이들 ‘3대 권력기관’을 중심으로 늘어났다.

국세청의 패소 충당금 증가율은 전년 대비 46.8%로 전체 평균치보다 낮았지만 액수는 가장 많은 2933억원이나 늘었다. 공정위는 전년보다 무려 439.6% 급증했다. 관세청은 전년 대비 576억원(327.2%) 늘었다. 뒤집어 보면 그만큼 무리한 세금·과징금 부과가 많았다는 사실을 정부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홍성일 전국경제인연합회 금융조세팀장은 “과도한 법 집행으로 정부의 우발채무가 급격히 늘었다”며 “지난해 지하경제 양성화와 경제민주화 바람으로 늘어난 세무조사와 불공정거래 조사도 결과적으로 정부의 패소 비율과 금액을 높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송 관련 충당금은 가뜩이나 취약한 정부의 재정운용에 상당한 압박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난 1분기 재정적자는 총 24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조5000억원 증가한 상태다. 세수 진도율도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던 지난해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1분기 세수 진도율은 22.5%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0.8%포인트 떨어졌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 등으로 민간소비가 위축되고 기업들의 투자심리도 악화되고 있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이어져온 미약한 경기회복세가 하반기부터 바로 꺾일 수도 있다는 ‘더블딥’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2조원에 육박하는 충당금은 유사시 재정확대를 통한 정부의 탄력적 대응을 어렵게 함으로써 경제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가뜩이나 나라살림이 빠듯한 여건에서 충당금 적립 규모가 1년 새 7000억여원이나 늘어난 것은 적지않은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또 정부의 무리한 행정력 발동과 잇따른 패소는 비용과 별개로 국정 전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조사와 제재를 늘리고 보자는 식의 행정이 기업과 개인들의 경제적 비용과 정서적 반발을 야기하고, 최종 재판에서도 질 경우 그 부담이 정부 전체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한편 회계결산 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밝힌 총 소송가액(정부 피고 기준)은 지난해 말 기준 9조6582억원으로 전년(9조2240억원)보다 4341억원 증가했다. 소송액 1조원이 넘는 부처는 공정위(2조7211억원), 법무부(1조5956억원), 국세청(1조4016억원), 국방부(1조2857억원) 등이다.

세종=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