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우먼 파워' 박은주 대표 사퇴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이자 대표적인 여성 출판인으로 손꼽히는 박은주 김영사 대표(사진)가 전격 사퇴했다. 출판계와 김영사 측에 따르면 박 대표는 출판 유통과 관련한 회사 내부 문제와 사재기 의혹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지난달 31일 출판사와 한국출판인회의에 사의를 표했다.

김영사는 지난 4월 말 유통 및 마케팅과 관련한 내부 문제가 불거지면서 간부 두 명을 대기 발령 조치하고, 다른 직원 두 명을 내보내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자체 조사를 벌였다. 지난달에는 서적 도매업체(총판)가 직원들에게 김영사의 자회사인 김영사온에서 펴낸 책을 한 권씩 사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재기 논란이 불거졌다. 이와 관련해 출판유통심의위원회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

김영사 관계자는 “회사 내부 유통 문제로 인해 최근 분위기가 상당히 어수선했다”며 “사재기 의혹에 대해서는 김영사가 직접 지시한 적은 없지만 회사 이름이 거론되는 것에 박 대표가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출판인회의 측에 “회사에 복잡한 일이 있어 그만두게 됐다. 1~2년 동안은 복귀하지 않고 쉬고 싶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는 김영사 편집장으로 일하던 1989년, 설립자인 김정섭 회장으로부터 대표이사 자리를 물려받아 출판계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문명의 충돌》《정의란 무엇인가》 등 숱한 베스트셀러를 펴내 ‘출판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다. 지난해에는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직을 맡아 도서정가제 강화 법안 통과 등 출판계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왔다.

박 대표의 갑작스러운 사퇴 소식에 출판계 인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 출판사 대표는 “박 대표가 출판인회의 회장직에서 물러나면 출판문화진흥기금 조성 같은 현안 진행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출판인회의는 2일 오전 긴급 실행이사회를 열었지만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오는 10일 이사회를 다시 열어 대행 체제나 신임 회장 선출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한 일간신문에도 보도된 사재기건은 해프닝에 불과했다. 여러 곳에 확인해보니 총판 사장이 우정 구매를 빙자하며 일을 벌인 것인 데다 구입한 책도 10여권 미만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영사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김 회장이 25년 만에 회사로 복귀해 지난 4월부터 현안을 챙기고 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