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금융회사 대표 A씨는 대학 졸업장이 두 개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그가 기부금을 내는 모교는 한 곳이다. 하버드대에 매년 100~500달러씩 송금한다. A대표는 “하버드는 기부자에게 기금의 사용처와 투자 현황을 꼬박꼬박 알려주는 데 반해 서울대는 돈을 어디에 썼는지 알려주지 않는다”며 “기부한 뒤 보람을 느낄 만한 최소한의 정보도 제공받지 못하기 때문에 서울대에는 기부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학기금 운용 틀을 바꾸자] 기부금 '연간 보고서'도 못 내는 대학들…전문 운용인력 '제로'
‘애뉴얼 리포트’조차 없다

국내 대학의 기부자에 대한 ‘정보 제공’은 빵점 수준이다. 적립 기금 1000억원 이상인 사립대(21개)와 100억원 이상 국공립대 31곳 중 기금 현황과 운용 실적을 담은 애뉴얼 리포트(연간 보고서)를 작성하는 대학은 한 곳도 없다.

그나마 홈페이지에 기부금 내역을 공개하는 곳은 서울대 KAIST 부산대 경상대 등 국공립대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 기부금을 낼 수 있는 방법과 기부자 명단, 기금에 얼마가 적립돼 있는지만 있을 뿐 어떻게 투자해 수익률이 얼마인지, 기부 목적에 맞게 쓰였는지 등에 관한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 김성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금 대부분을 은행 예금에 넣는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예치 은행을 어떤 기준에서 선정했는지 정도는 고시해야 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미국 대학들은 다르다. 하버드대는 올해 10억달러(약 1조240억원)를 목표로 기부 로드쇼를 열 예정이다. 기금운용 성과와 자금의 사용처 등을 빠짐없이 공개해 기부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한 관계자는 “운용을 제대로 한 적도 없기 때문에 이런 식의 기부행사는 꿈도 꾸지 못한다”고 말했다.

9506억원 VS 428억원

이 같은 불성실한 기금 관리는 기부금 감소로 이어진다. 2010년 4471억이었던 사립대 193곳의 기부금 총액은 2011년 4041억원, 2012년엔 3858억원(교비회계 기준)으로 축소됐다. 대학별 수입도 열악하다. 산학협력단을 합산한 연간 기부금이 100억원을 넘는 곳은 고려대 연세대 외에 한남대 한양대 성균관대 영남대 동국대 을지대 경희대 한림대 정도다. 중앙대(92억원), 서강대(75억원)조차 100억원을 밑돈다.

단일 대학을 비교해도 상대가 안 된다. 미국 대학 중 작년에 기부금을 가장 많이 모은 곳은 스탠퍼드대다. 기부금 총액은 9억3160만달러(약 9506억원)에 달한다. 한국의 지난해 1위인 고려대는 스탠퍼드대의 22분의 1인 428억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전년(441억원)보다 감소한 것 이다.

국내의 척박한 기부문화도 문제다.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가 금액에 관계없이 15%로 줄어들면서 기부가 많이 감소했다”며 “선의의 지출인 기부에 대해선 세금을 면제해주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한완선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교육부가 대학별 경쟁력에 근거해 정원 감축 비율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며 “대학별 기금 모집 및 관리 능력 등 재정 지표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것”이라며 “미국처럼 한국 대학도 펀딩 로드쇼를 해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교육부 대학심사과장은 “하반기에 평가 지표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