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국제콘퍼런스에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맨 앞), 토머스 사전트 미국 뉴욕대 교수(두 번째),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교수(세 번째) 등 참석자들이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교수의 기조연설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국제콘퍼런스에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맨 앞), 토머스 사전트 미국 뉴욕대 교수(두 번째),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교수(세 번째) 등 참석자들이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교수의 기조연설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의 사례를 뒤따르지 말라는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거시경제학의 대가인 로버트 배로 미국 하버드대 교수(사진)가 한국 정부에 이같이 당부했다. 경기 회복을 위해 일본처럼 대규모 공공사업에 집중하다간 막대한 빚만 남는다는 조언이다. 환율 급락에 대해서도 정부 개입 대신 ‘시장에 좀 더 맡길 것’을 강조했다.

한국은행이 2일 이틀간 일정으로 주최한 ‘2014 한국은행 국제콘퍼런스’에 참석한 배로 교수는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경제 현안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을 통한 경제 성장을 강조해온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다. 1987년부터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매년 노벨경제학상 후보자로 유력하게 언급되기도 했다.

그가 일본 사례를 우려한 것은 막대한 빚 때문이다. 일본의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배를 넘는 1000조엔(약 10조달러)에 달한다. 과거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 각종 공공사업을 벌였지만 경제 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배로 교수는 “일본의 높은 공공부채 비율, 대규모 공공사업 등은 따라가지 않는 것이 좋다”며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경계했다. 한국의 경제 성장 속도에 대해선 “연 3~4% 성장률은 과거에 미치진 못하지만 세계적으로는 높은 수준”이라며 “정부가 추가 부양정책을 펼 필요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한은 국제콘퍼런스] 로버트 배로 "한국, 공공부채 비율 높은 일본 닮지 말아야"
부진한 내수와 달리 경상수지가 26개월째 흑자를 나타내고 있는 데 대해 그는 크게 걱정할 것은 아니라고 봤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성장 원동력은 수출이었고 지금도 그러한 추세”라며 “한국의 수출과 수입 증가율은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수출 증가속도가 수입보다 빠를 뿐 ‘불황형 흑자’는 아니라는 견해다.

배로 교수는 한국 정부가 ‘내수와 수출의 균형성장’을 추진하고 있는 데 대해 “합당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같은 맥락에서 한국 정부는 환율하락(원화값 상승) 압박을 어느 정도 용인해야 한다고 했다. “자유무역과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원화절상에 찬성한다”는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로 자연스럽게 환율이 하락하면, 가계 소비여력이 높아져 내수가 살아나고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도 균형 상태로 되돌릴 수 있게 된다는 시각이다.

세월호 참사의 경제적 영향에 대해서는 “국민적인 슬픔을 초래한 큰 사고였지만 ‘드문 거시경제적 재난’에 속하진 않는다”고 평가했다. 소비에 일시적인 영향을 미칠 뿐이기 때문에 특별히 정부가 개입할 필요는 없다는 조언이다.

그가 말하는 ‘드문 거시경제적 재난’은 GDP나 소비를 10% 이상 감소시키는 사건을 말한다. 2차 세계대전이나 1930년대 대공황, 2008년 금융위기 등이 여기에 속한다.

앞서 배로 교수는 이날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세계적으로 이 같은 재난의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에 대응한 각국 정부의 정책이 오히려 불확실성을 높였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에 대해서도 “그 효과가 제한적이고 적절한 시점에서 출구전략을 시행하기도 매우 어렵다”고 비판했다.

복지와 연금, 건강보험 등 일부 국가의 재정정책도 불확실성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미래에 얼마나 많은 지출과 조세부담이 필요한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금융규제 등에 대해서도 “민간이 이미 교훈을 얻었기 때문에 특별히 필요없다”며 “정부 규제는 경제에 대체로 해롭다”고 말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