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0일이 지났지만 이벤트나 단체행사에 의존하는 업종의 매출 감소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3일 서울 송파구 탄천주차장에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0일이 지났지만 이벤트나 단체행사에 의존하는 업종의 매출 감소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3일 서울 송파구 탄천주차장에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월드컵 개막이 열흘밖에 안 남았는데 아직 단체응원 티셔츠 주문을 한 건도 못 받았어요. 교회의 여름 성경학교 단체티 주문도 몰려들 시기인데… 분위기가 정말 좋지 않습니다.”

3일 오전 서울 창신동의 의류 날염(捺染)업체인 ‘나염세상’. 단체의류 판매 업체 100여곳을 거래처로 두고 있는 이곳은 전체 생산량의 80%가 ‘단체티’다. 6년째 공장을 운영 중인 임재일 대표는 “4년 전 이맘때 누렸던 월드컵 특수를 올해는 전혀 느낄 수 없다”고 했다. “요즘 이쪽 사장님들끼리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두 가지예요. ‘거긴 어때요’, ‘정말 죽겠어요’.”

이날은 전국 각지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49재가 열린 날이었다. 사고 직후 급격히 위축됐던 백화점, 대형마트, 홈쇼핑 등에서의 일상적인 소비 활동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나염세상처럼 ‘단체주문’에 의존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사정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정부, 기업, 학교들이 떠들썩한 이벤트를 여전히 꺼리고 있어서다.

나염세상의 올 5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줄었다. 통상 단체의류 업체에선 5월 매출이 연간 매출의 30~50%를 차지하는 최고 대목이다. 임 대표는 “임대료와 인건비 등을 빼니 손에 쥐는 돈이 거의 없다”며 “이걸로 올 하반기까지 공장을 운영하고 대출도 갚아야 할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역시 동대문에서 단체의류 전문점을 운영하는 고병준 사장도 “세월호 직후 정부가 1학기 수학여행을 전면 금지해 업계 전체에 타격이 컸는데 지금 분위기라면 월드컵 거리응원도 열리지 못할 판”이라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패션시장 경기의 가늠자라 할 수 있는 동대문 야간 도매시장에도 유동인구가 크게 줄었다. 도매상가의 한 상인은 “찾아오는 손님 자체가 없어 가장 바빠야 할 새벽에 상인들이 스마트폰만 보고 있을 때가 많다”며 “장사가 안되니 물건을 실어나르는 퀵서비스나 주변 식당까지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고 있다”고 전했다. 두산타워, 롯데피트인 등 대형 쇼핑몰은 중국 등 외국인 관광객 덕에 그나마 ‘선방’하고 있다.

이벤트 전문업체와 음식점들도 여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행사 대행업체인 플랜애드는 세월호 사고 이후 단 한 건의 행사를 따내는 데 그쳤다. 그마저도 1000만원대 이하의 규모가 작은 행사였다. 이 회사의 서정우 이사는 “큰 행사를 진행할 만한 곳들이 아직 눈치를 보고 있다”며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도록 작은 규모의 행사만 조금씩 재개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 이사는 “업계에서는 4월 하순의 상황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사태가 언제 정상화될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다.

기업들의 회식이 자주 열리는 서울 다동 일대 음식점들은 요즘 오후 9시인데도 한산하다. 한 일식당 주인은 “사고 이전만 해도 예약을 해야 저녁에 식사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예약 없이 와도 자리가 있다”고 말했다. 주변의 한 기업 관계자는 “회식이 줄어든 데다 회식을 하더라도 2차 없이 9시 이전에는 끝내는 분위기가 암묵적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전국 음식점주 5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세월호 사고 이후 한 달간 매출이 평균 35.9%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각종 행사 중단으로 내수 경기가 타격을 입자 공연, 축제 등의 이벤트 재개를 유도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각 부처와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에 “직원의 문화·예술·체육·관광 활동 참여 및 건전한 여가 활동을 독려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교육부에도 각종 체험형 학습 활동이 조속히 재개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이달 초 연휴와 브라질월드컵, 8월 교황 방한 때까지 애도 분위기로 소비 침체가 이어진다면 경기 부진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며 “세월호 참사 이후 소상공인과 지역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이제는 여가 활동과 소비심리가 살아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현우/강진규/이승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