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때 본 美문화원 점거, 30년 연구 출발점 됐죠"
1985년 5월23일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은 그의 삶에 큰 변곡점이 됐다. 당시 21세의 재미 동포 대학생이던 그는 미 대사관의 인턴사원이었다. “그때 대사관 정무팀장이었던 캐슬린 스티븐스(전 주한 미 대사)를 비롯한 외교관들이 위기를 평화롭게 해결하려고 대학생들과 밤을 새워가며 협상하는 현장을 지켜봤습니다. 현실 정치와 외교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죠.”

미 최고 권위의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연구직(korea chair)을 맡은 캐서린 문 웰즐리대 정치학과 교수(50·사진)의 이야기다. 문 교수는 2일(현지시간) 워싱턴DC 브루킹스연구소 코리아체어 출범 세미나에서 “미 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은 외교문제와 국제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출발점이었다”며 30년 전을 회고했다. 그는 “30년 후에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섰고 내가 그토록 꿈꿔왔던 직업을 얻었다”고 말했다.

196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문 교수는 스미스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뒤 프린스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30세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배출한 보스턴 명문 사립여대인 웰즐리대 정치학과 교수로 임명됐다. 미 학계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로 꼽힌다. 박사학위 논문은 ‘한국 기지촌 여성의 삶과 사고방식’이었다. 2002년에는 ‘동맹속의 섹스:한미관계 속의 기지촌’이라는 책을 펴내 기지촌 여성의 삶을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조명하기도 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만난 한반도 전문가들은 “문 교수가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다는 게 코리아체어를 이끄는 데 큰 장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싱크탱크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한반도 전문가는 한국어를 못해 1차 정보수집 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 교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한국말을 엄격하게 가르친 덕분”이라고 했다.

문 교수는 향후 연구방향에 대해 한국 민주주의 도전과제, 북한 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접근, 한·미동맹 강화 등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이 경제뿐 아니라 K팝 등 문화적인 측면의 소프트파워에서도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면서도 “탈북자 문제, 다문화 가정 등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도전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탈북자와 외국인 노동자, 이민자 증가 등으로 이른바 ‘뉴 코리안’이 2030년에는 전체 인구의 6%, 2050년에는 10%에 이르게 돼 단일민족 개념을 새롭게 정의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또 저출산에 따른 고령화로 2050년에는 노인인구가 40%에 달해 이들의 보수적 성향과 ‘뉴 코리안’의 진보성향이 충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문 교수는 북한 문제와 관련해 “중국은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한·미 양국은 북한 문제를 중국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데 국제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은 일부가 희망하는 것처럼 고립돼 있지 않다”며 “45개 유럽 국가가 북한과 수교했고 남미도 20개가 넘는 국가가 북한과 수교했으며 아세안의 모든 나라가 북한과 공식관계를 맺고 있다”고 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워싱턴의 유수 싱크탱크 중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 이어 두 번째로 코리아체어를 두게 됐다. SK그룹이 200만달러, 한국국제교류재단이 100만달러를 출연해 브루킹스에 연구직을 설치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