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이 지난 1일 재위 39년 만에 전격 퇴위를 결정하면서 전 세계에서 오랫동안 왕위를 지키고 있는 왕과 군주제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스페인에서 군주제 폐지를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군주제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스페인 국왕 퇴위로 본 세계의 장수왕
○덴마크·스웨덴 왕도 40년 넘어

가장 주목받는 왕은 유럽에서 재위기간이 가장 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다. 88세인 여왕은 1952년 부친 조지 6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지 올해로 62년째다.

거쳐간 총리만 윈스턴 처칠부터 데이비드 캐머런까지 12명에 달한다. 여왕이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어 빅토리아 여왕이 수립한 64년의 최장기 영국 국왕 재위 기록 돌파도 무난할 것이란 전망이다. 여왕의 장수 덕에 이미 할아버지가 된 찰스 윈저 왕세자(65)는 62년째 왕세자다. 찰스 왕세자는 올초부터 여왕의 공식 업무 일부를 담당하고 있지만 영국 왕실은 양위 계획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밖에 유럽에서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는 42년, 스웨덴의 칼 구스타브 16세는 41년 동안 왕위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에서 현존하는 군주 가운데 최장기 재위 기록은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이 갖고 있다. 1946년 형인 라마 8세가 의문의 권총사고로 타계한 뒤 19세에 즉위해 올해로 68년째다. 태국 국민은 국왕을 살아 있는 부처로 여겨 절대적인 지지와 존경을 보낸다. 태국에선 땅에 떨어진 지폐를 밟으면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지폐에 그려진 국왕을 밟는다고 생각해서다.

국왕의 정치적 영향력도 강력하다. 태국에서 쿠데타 성공은 국왕의 승인 여부에 따라 결정됐다.

47년간 브루나이를 통치해온 하사날 볼키아 국왕도 ‘장수 왕’에 속한다. 1967년 왕위에 오른 그는 국방장관, 재무장관, 최고 종교지도자를 겸하며 브루나이를 직접 통치하고 있다. 개인 재산이 220억달러(약 19조원)에 달하는 ‘부자 왕’이기도 하다. 명절에 국왕에게 인사하는 국민에게는 100만원 상당의 현금을 제공하기도 한다.

고령이지만 재위기간은 그리 길지 않은 왕도 있다. 올해 80세인 아키히토 일왕은 올해로 즉위 25주년을 맞는다. 55세의 늦은 나이에 왕이 된 것은 부친 히로히토 일왕이 63년이나 왕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91세지만 재위기간은 9년에 그친다. ‘형제계승’ 원칙에 따라 형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군주제 폐지 논란 확산

한편 유럽 입헌군주국가를 중심으로 왕실 유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이다. 영국 왕실 운영에 드는 비용은 한 해 3610만파운드(약 617억원)에 달한다. 영국에선 복지비 삭감 등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왕실 유지비가 지나치게 비싸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영국 여왕이 형식적 국가원수인 영연방(16개국)에서도 반대 기류가 있다. 1999년 군주제 폐지를 놓고 국민투표까지 한 호주에서는 꾸준히 군주제 폐지를 위한 개헌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스페인에선 군주제 폐지를 안건으로 국민투표를 하자고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네덜란드에선 공화주의 운동단체 등을 중심으로 국왕이 하는 일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연봉을 받는다며 국왕의 봉급을 삭감하자는 청원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벨기에에선 법률 최종 승인권, 총리와 각료 임면권 등 국왕이 가진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강영연/김순신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