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에 배를 대니 사당은 헐어 있어/잡초 우거지고 무심한 새만 지저귀네/장군 한번 가시고는 큰 나무만 남았는데/창해 깊은 물에 공훈이 잠겨 있네’

충렬사에서 권용정이 이순신을 기려 쓴 시의 한 구절이다. 이 시를 되뇌이며 6년 전 만났던 장군에 대한 기억을 반추한다.

2008년 국회 국토해양위원장을 맡게 됐을 때다. 이 땅의 바람과 물이 새겨 놓은 역사를 다시금 보고 싶어졌다. 해남 문내면 우수영관광지에서 충무공 이순신을 만났다. 거기에 걸려 있는 그의 큰 칼이 눈에 들어왔다. “신에게 전선(戰船)이 아직도 12척 있습니다. 죽을힘으로 막아 지키면 오히려 해낼 수 있습니다. 지금 만약 수군을 전부 폐지한다면, 이는 왜적이 행운으로 여길 것입니다. 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입니다”라고 울부짖던 충무공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울돌목 그곳, 명량해협에서 충무공은 12척의 전선으로 133척의 일본 전선과 대결해 기적과 같은 승리를 일궈냈다. 그 명량해협에서 13㎞ 떨어진 곳이 세월호의 비극이 일어난 맹골수도(孟骨水道)다. 400년 전의 장군은 이곳을 생명의 바다, 기적의 바다로 만들었지만 오늘날 이 바다는 죽음의 바다, 고통과 슬픔의 바다가 되어 버렸다.

지금,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접점인 동북아 바다에 분쟁의 큰 너울이 일렁거리고 있다. 그동안 바다의 수많은 역경 속에서 넓은 바다 경계선을 누비며 중국 어선의 불법행위로부터 우리의 해양주권을 지켜온 이들은 누구였으며 우리의 영토인 독도와 이어도를 지켜온 이들이 누구였는가, 해군이 개입하기 힘든 해안경계선과 해상오염 등의 문제를 풀어왔던 이들이 누구였는가를 생각해본다.

1932년 6월5일 오늘은 마침,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문을 닫았던 현충사(顯忠祠)가 중건된 날이다. 일제의 탄압으로 20여년간 추모의 향불이 끊겼던 현충사를 이 땅의 민초들이 마음을 모아 다시 보수하고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날이다. 작은 희망을 큰 희망으로 바꾼 충무공의 ‘불굴의 정신’을 이 땅에 되살린 날이다.

지금, 내 마음은 충무공 이순신과 만나기 위해 전남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에 다시 서 있다. 2008년, 그때 만났던 이순신 장군이 지금 내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피 흘려 지킨 이 바다, 희망의 바다를 지켜달라. 아직도 12척이 남아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지켜야 한다.”

이병석 < 국회 부의장 lbs@assembly.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