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 "기업 지배구조 이슈가 내년까지 증시 주도할 것"
“내년 말까지 기업 지배구조 이슈가 증시를 지배할 겁니다. 지배구조 이슈를 명확하게 정리하기 위해 지주사 전환을 발표하는 기업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50·사진)은 명쾌했다. ‘가치주 전도사’인 이 부사장도 기업 지배구조 이슈의 중요성에 흔쾌히 동의했다.

요즘 유행하는 가치주펀드를 맨 처음 도입한 사람이 바로 이 부사장이다. 1998년 12월 ‘동원밸류 이채원 1호’를 만든 지 1년도 안 돼 수익률 129%를 달성하고 스타덤에 올랐다.

인터뷰를 위해 지난달 말과 이달 초 서울 여의도 한국밸류운용 본사에서 이 부사장을 두 번 만났다. 약간 초췌해 보였다. 1조5000억원 규모이던 운용자산이 2년 만에 7조원대로 불어나면서 고민할 게 많아졌다고 했다.

▶삼성SDS 등이 상장 계획을 밝힌 뒤 삼성그룹주가 일제히 급등했는데.

“그동안 눈치만 보던 기업들이 앞으로 지주사 전환 쪽으로 발빠르게 움직일 것이다. 지주사를 설립할 때 주식 양도차익 과세를 유예해주는 특례기간이 내년 말이면 끝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지주사로 전환하면 주가는 20~30% 이상 오르는 게 당연하다. 지분율이 높지 않은 기업 오너들이 주주친화 경영을 본격화할 수 있어서다. 경영 투명성이 높아지면서 최대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관계가 같아진다는 의미다.”

▶지주사 전환 시점을 예상할 수 있는 방법은.

“각 기업이 언제 지주사로 전환할지 알기 어렵다. 다만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부담 때문에 주가가 가장 많이 빠졌을 때 전격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과 현대차그룹만 지주사로 전환해도 코스피지수는 지금보다 10% 이상 오를 것이다.”

▶올 하반기 지수를 예측한다면.

“지수를 전망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지수는 항상 기업 실적과 연동돼 있다. 철저한 종속변수다. 작년 초 상장기업의 이익 총액이 100조원에 달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자 주가가 크게 뛰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68조원에 그쳤다. 주가도 다시 지지부진해졌다. 올해는 기업 실적이 80조~90조원은 될 것 같다. 시장 분위기가 작년보다는 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중소형주 위주로 많이 올랐다.

“작년엔 4분기를 빼놓고 중소형주가 주도하는 시장이었다. 올 1분기에도 대형주보다 중소형주가 훨씬 높은 수익률을 나타냈다. 1998년 이후 대형주가 중소형주에 비해 갖고 있는 프리미엄의 평균값을 내보니 95.5%였다. 대형주 가치가 항상 두 배 정도 높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지금은 대형주의 프리미엄이 중소형주 대비 50% 정도에 불과하다. 앞으로 대형주가 훨씬 유망할 것으로 보는 근거다. 우리도 요즘 패션 유통 건설 은행 등 대형 경기민감주 위주로 펀드에 많이 담고 있다.”

▶직접 운용하는 가치주펀드의 운용 전략도 바뀌고 있나.

“기본적인 투자 전략에는 변함이 없다. 투자의 기본은 성장성과 자산가치, 수익가치 등 3가지다.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는 주가수익비율(PER)이나 주가순자산비율(PBR) 등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성장성을 어떻게 따지느냐다. 지배구조의 투명성이나 경영자의 자질을 얘기하지만 추상적이고 객관적이지 않다. 그래서 기업의 성장성에 대한 비중을 딱 20~30%로 제한한다. 핵심은 수익가치인데, 특히 과거와 현재 수익이 어떤지를 많이 살펴본다. PER이 7~8배 이하이고 배당이 많고 재무구조가 탄탄한 회사를 좋아한다.”

▶개별 종목에 투자하는 기간은.

“투자기간을 따로 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굳이 얘기하자면 적정 주가에 도달할 때까지다. 한 기업의 주가가 한 달 만에 내재가치에 도달하면 바로 팔아치우기도 한다. 한 종목을 8~10년 동안 들고 있는 경우도 있다. 다만 지금까지 투자한 종목의 평균을 내보니 종목당 대략 3년 이상 갖고 있는 걸로 나왔다. 그래서 작년보다 올해가 더 두렵다. 작년엔 그렇게 사랑스럽던 종목들이 단기간에 급등하면서 매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럴 땐 저평가주로 열심히 갈아타기를 해놓고 기다려야 마음이 편하다.”

▶미국 영국 등 외국과 달리 유독 직접투자자들이 많은 것 같다.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유자금으로 투자하면 종목이나 한도의 제한도 없고, 펀드와 달리 꼭 환매할 필요도 없어 장기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드시 전제가 있다. 하루에 3시간 이상 주식을 공부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패를 보지 않고 포커를 치는 것과 똑같다. 또 자신이 잘 이해하는 산업이나 기업에만 주목해야 한다.”

▶좋은 펀드를 고르는 요령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점은 장기 성과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펀드매니저의 철학이 유지돼왔는지, 또 그 철학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역사가 오래된 펀드일수록 좋은 펀드일 가능성이 높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