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금융산업의 '전과목 장학생' 스트레스
많은 과목을 한꺼번에 공부하다 보면 전 과목에서 다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쉽지 않다. 영어를 잘하는 학생이 수학에 약하기도 하고 소위 ‘국영수’에 강한 학생이 예체능 과목을 못해 내신 성적이 나빠지기도 한다. 물론 간혹 특출한 친구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에게도 여전히 상대적으로 강하거나 약한 분야가 있게 마련이다.

국영수 얘기를 꺼낸 이유는 따로 있다. 최근 금융산업 상황은 상당히 복잡하다. 우선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금융산업에 대한 비판적 분위기와 부정적 인식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세계적으로 규제강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고 강화된 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이 들고 있다. 자기자본을 더 쌓는 것도 어려운데 ‘볼커 룰’ 같은 규제가 금융회사 고유계정 거래를 통한 수익추구를 억제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수익을 내기가 참 어렵다. 최근 많은 글로벌 금융사들이 이런 흐름을 반영해 사업구조 개편을 수행 중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수익성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고 결국 건전성에까지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반대로 투자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움직임이 국내에서 나타나며 불필요한 규제를 줄이는 작업도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진입 규제, 영업행위 규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와 별도로 소비자보호 관련 규제, 개인정보보호 관련 규제는 강화되는 추세다. 특히 소비자보호는 만만치 않은 과제다. 상품 판매나 영업행위에서 소비자보호를 최우선으로 두고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의를 하지만, 문제는 어느 정도까지냐는 것이다. 최근 카자흐스탄에서 일부 은행이 모기지 관련 상품 판매를 중단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금융소비자보호원이 소비자보호와 관련해 지나치게 강한 규제를 하면서 이를 준수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소비자보호라는 과제를 추진함에 있어 ‘어느 수준까지’라는 질문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이 밖에 실물부문, 약자에 대한 지원도 금융산업에 대해 요구되는 과제다. 중소기업 지원, 창조경제 지원, 창업 지원, 서민금융 강화, 금융자문 및 교육의 강화,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의 동참, 그리고 통일금융을 통한 통일준비작업에의 기여 등이다.

실로 다양한 과제가 만만치 않은 무게감을 던지고 있다. 나아가 금융부문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분야인 만큼 자체적인 경쟁력 강화와 발전을 통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할 과제도 주어져 있다. 또 금융위원회가 제시한 ‘10-10 밸류업 전략’은 많은 과제를 던지고 있다. ‘10-10 밸류업’은 금융산업의 부가가치를 10년 내 국내총생산(GDP)의 10%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내용이다. 경쟁과 혁신 촉진, 금융과 실물의 융합성장, 국민 재산의 안정적 보호라는 3대 미션 아래 구체적 목표로는 기술·지식재산금융 활성화, 금융소외계층 접근성 제고, 100세 시대 신금융수요창출 등을 내걸고 있다.

이쯤 되면 금융산업 상황이 정말 만만치 않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다. 국영수 분야는 물론 예체능 과목과 동아리 활동에, 사회봉사 활동까지 다 잘해야 한다. 이 중 하나라도 못하면 벌을 세게 받는다. 금융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상당하다 보니 어느 하나만 문제가 생겨도 엄청난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벌이 두려워 무리를 하다가 금융산업의 건강을 해친다면 이 또한 원하던 바와 다른 부작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금융에 대한 지나친 부정적 인식은 부메랑이 돼 돌아와 국민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금융산업에 주어진 역할과 과제가 다양하고 무거운 만큼 금융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어느 정도 해소돼야 할 필요가 있다. 금융과 실물, 그리고 금융과 일반 국민들 간에 벌어진 간극이 보다 줄어들면서 우리 경제 내에서 금융산업이 수많은 과제들을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윤창현 < 한국금융연구원장 chyun3344@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