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을 좇다가 기초를 잃었다.”

한양대 공과대학의 50년간 학사 과정을 분석한 배영찬 화학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내린 결론이다. 융합 교육을 강조하며 학생들의 수업선택권을 늘렸지만 기초 능력은 후퇴하고 학점은 스펙 쌓기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분석이다.

배 교수는 “공학 전공자가 전공 수업을 이수한 후 물리, 화학, 경제, 경영 과목을 들어야 융합 효과를 거두는데 실제로는 교양이나 스펙 쌓는 데 좋은 과목을 선택하고 있다”며 “융합을 추구하다 엉뚱하게 기초 능력만 후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1975년까지 공대생의 졸업 의무 이수학점은 160학점대였다. 이 가운데 전공 학점은 90학점이다. 비중이 60%를 넘는다. 1976년 이후 졸업 이수 학점을 140학점으로 낮췄지만 전공 이수 요건은 큰 변화가 없었다.

2000년 들어 학부제를 도입한 게 전공 수업 축소의 단초로 작용했다. 전공 필수 학점을 최저 21학점으로 줄였고 2005년에는 필수 과목을 일부 늘렸지만 졸업 때까지 따야 하는 전체 전공 학점을 50~60학점대로 축소했다.

공대에 복수전공, 다중전공 등을 활성화시킨 것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이들이 졸업 때까지 듣는 전공수업은 고작 36~42학점. 전체 졸업 이수학점의 30%만 전공 수업을 들어도 공학 전공자로 인정받게 된 셈이다.

실험수업, 현장실습이 줄어든 것도 공대 교육 부실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한양대 공대의 필수 실험과목 학점은 1970년대와 비교해 37% 줄었다. 1975년 기계공학과 실험수업은 8개 과목 19학점에 달했지만 올해는 4개 과목 12학점뿐이다. 졸업 이수 요건의 8%에 불과하다. 실험과목도 제대로 듣지 않고 졸업하게 되면서 취업 후 이들을 재교육하는 데만 6개월 이상 걸린다는 기업들의 원성이 커진 이유다.

2000년대 초반 실험수업을 늘리는 시도가 있었지만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대학들이 다시 수업을 축소했다. 배 교수는 “공대 실험수업 상당수가 1970년대 만들어진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다 보니 기업 현장에서 필요한 내용과 동떨어진 것도 문제”라며 “수업 내용과 장비 등 공대 실험수업 전반을 기업 현장에 맞게 새롭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체에 직접 나가 배우는 현장실습도 요식행위로 전락했다. 한양대뿐만 아니라 주요 대학의 기업 인턴십 기간은 4~6주 수준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마땅한 교육 프로그램이 없어 발표 준비 등 허드렛일만 하다 끝나기 일쑤다. 반면 핀란드 헬싱키공대는 12개월간 현장과 밀착된 기업 인턴십을 진행한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