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들어 관객 이탈과 소재 고갈로 어려움을 겪던 영미권 뮤지컬 제작사들은 ‘42번가’ 등 뛰어난 ‘뮤지컬 독립 영화’를 속속 무대 공연물로 재탄생시켰다. 익숙한 고전을 현대적인 공연 기법과 감각으로 재무장해 ‘올드 팬’과 젊은 층을 동시에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지난 5일 개막된 뮤지컬 ‘싱잉 인 더 레인’도 그중 하나다. 국내엔 ‘사랑은 비를 타고’로 알려진 진 켈리 감독·주연의 동명 영화(1952년 작)가 원작으로, 1983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됐다. 국내에선 2003년 이후 11년 만에 무대에 올랐다.
공연은 원작의 스토리와 음악을 충실하게 따른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던 1930년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당대 최고 스타 돈 락우드와 무명 배우 캐시 셀던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관건은 빗속에서 락우드 역을 맡은 진 켈리가 신기에 가까운 춤 솜씨를 보여주는 ‘싱잉 인 더 레인’ 등 ‘쇼 뮤지컬’ 장면들을 얼마나 생동감 있고 입체적으로 되살리느냐에 달려 있다.
연예기획사 SM C&C가 소속 가수 등 젊은 배우들을 기용해 만든 이번 무대는 퍼포먼스에선 합격점을 줄 만하다. 특히 무대에 1만5000L의 물을 뿌리는 ‘빗속 퍼포먼스’가 그럴싸하다. 진 켈리의 명연을 기억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화면이 줄 수 없는 무대만의 시원한 쾌감과 살아 있는 역동성을 만끽하게 해 준다.
코스모가 친구 락우드를 위로하는 ‘웃겨’ 장면은 공연의 백미다. 영화 이상의 세심한 연출과 코스모 역을 맡은 육정욱의 기량이 돋보인다. 음악감독 변희석이 이끄는 17인조 오케스트라가 안정된 음악을 들려주고, 음향도 수준급이다. 배우들의 덜 여문 연기와 호흡이 개선되고 무대의 잔 실수들을 줄인다면 무더운 여름날 감상하기에 썩 괜찮은 공연이다. 오는 8월3일까지, 6만~13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