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로&베느와 메르의 ‘고양이와 착오에 대하여’.
지로&베느와 메르의 ‘고양이와 착오에 대하여’.
미술관에서 관람객은 미술작품과 감상이라는 행위를 통해 관계를 맺는다. 관객은 정해진 동선을 따라 작품을 감상하기만 하고 작품은 항상 그 자리에 감상의 대상으로 존재할 뿐이다. 과연 전시가 주는 즐거움이 이런 일방적인 관계뿐일까.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14일부터 7월13일까지 열리는 ‘전시의 즐거움’ 전은 우리에게 길들여진 상투적인 전시 감상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시다. 노경민 작가와 문지윤 독립큐레이터가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아트선재센터가 해마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신진 기획자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공모전 ‘2014 오픈 콜’의 당선작이다.

75명의 응모작 중 영예를 차지한 ‘전시의 즐거움’은 미술품 전시장에서 작품이 보여지는 방식, 전시 기획이 작품과 관람자의 관계를 결정짓는 기존의 전시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오늘의 시각예술의 생산 방식은 물론 기존 전시 기획방식에 내재한 큐레이터, 작가, 작품, 관람객 사이의 위계질서와 불평등한 구조에 대해 대안을 모색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기존 전시 구조 밖에 전시가 존재할 수 있는지를 묻고, 그 가능성을 찾기 위해 인터뷰 방, 카메라 방, 사물의 방을 설치하자고 제안한다. 이를 위해 기획자들은 전시장 곳곳에 CCTV 카메라를 설치하고 모니터를 통해 살필 수 있는 독립된 방을 만들었다. 작품의 전시와 감상이 이뤄지는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오브제로 간주하는 발상이다. 그러나 관객의 눈에 비친 모니터에는 과거 녹화 영상과 실시간 영상이 뒤섞여 사물과 시간 간의 관계를 되새기게 만든다.

또 다른 방에선 노경민의 인터뷰에 기반한 비디오 작업 ‘이것은’과 파비안 지로&베느와 메르의 조각·오브제·설치 작업이 서로 대화를 한다. 작품과 관객이라는 상투적 관계가 아닌 작품과 작품의 관계를 설정해 흥미롭다.

이번 전시의 심사를 맡은 김성원 전시기획자와 김홍석 작가는 “사물들과 시간을 사색하며 전시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해서 전시를 해체하고 다른 가능성을 모색했다”고 평가했다.
(02)739-7098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