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부 가격개입의 후유증
“지자체에선 휴업하면 과태료 물리겠다고 겁주죠. 석유관리원은 품질검사 나오겠다고 으름장 놓죠. 막무가내로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네요.”

주유소 동맹휴업을 추진했다가 무산된 12일 경기 지역의 한 주유소 사장의 전화 목소리에선 답답함이 묻어났다. 지난 9일 한국주유소협회 소속 3029개 주유소는 정부의 주간보고제 도입에 반발해 이날 하루 휴업을 결의했다. 2년 유예를 주장해 온 협회는 이날 새벽까지 정부와 막판 협상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자 휴업을 오는 24일로 유보했다.

동맹휴업의 성사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관측이 많았다. 길 건너 주유소와 피나는 경쟁을 하는 업주로선 비록 하루라도 선뜻 휴업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회원사의 4분의 1가량만 참여 의사를 밝혔고, 그마저도 휴업 발표를 한 차례 늦춘 걸 보면 세 확보에 적잖은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주유소의 반발은 월 1회 석유거래 내역을 보고하던 것을 내달부터 주 1회로 바꾸는 내용의 석유수급 전산화가 빌미가 됐다. 전산화 비용과 추가 인건비에다 보고를 누락하면 과태료까지 물게 된다는 것이다. 거래내역만 투명해지면 가짜석유를 근절할 수 있다고 밀어붙이는 산업통상자원부 행태에 불만을 가질 만도 하다.

하지만 석유업계에선 이명박 정부 때부터 추진해 온 ‘기름값 인하’ 정책에 대한 불만이 쌓였다가 폭발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정부가 알뜰주유소를 내세워 과당경쟁을 유도하는 바람에 주유소 업계 전체가 경영난에 빠졌다는 것이다. 전자상거래에 참여하는 석유 수입사에 세금으로 환급금까지 지원해 가격인하 압박이 더 심해졌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높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정부가 유통시장에 직접 개입하면 주유소의 반발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A정유사 팀장은 “시행 2년 반이 돼가는 알뜰주유소는 전환 지원금 제도에도 불구하고 1040개 안팎인 반면 정책자금 지원 없이 자율적으로 전환하는 셀프주유소는 단기간에 1600개로 늘어난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시장 참여자들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스스로 찾도록 규칙만 정할 뿐 직접 ‘선수’로 뛰어선 안 된다는 주장이 석유업계에서 힘을 얻고 있다.

박해영 산업부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