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규제 중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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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국내 휴대폰 보조금의 규제 역사는 한마디로 기구하다. 논란의 시작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중고 단말기 양산 등을 문제삼아 그해 6월부터 이용약관에 보조금 금지조항을 신설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도 안되겠다 싶었는지 정부는 아예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 2003년 3월27일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보조금 지급을 금지했다.
그러던 정부가 3년 뒤에는 입장을 바꾼다. 관련 산업 발전을 지원한다며 2006년 3월27일부터 2년간 통신사가 예외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후 2008년 3월27일 관련 규제가 일몰되면서 보조금 지급은 원칙적으로 허용됐다. 하지만 규제 완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금지→예외→허용→27만원
방송통신위원회는 규제 일몰에도 불구하고 행정지도 등 시장개입을 멈추지 않았다.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던 방통위는 전기통신사업법상 부당한 이용자 차별 규제 조항을 들이대며 2009년 3월 통신 3사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여기서 등장한 게 27만원을 초과한 보조금 지급은 위법하다는 기준이다. 가입자 1인당 평균 예상이익(22만2000원)과 가입자 1인당 제조사 장려금(4만8000원) 합계를 넘지 말라는 것이다. 이때 계산된 27만원은 지금도 보조금 위법성을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다.
방통위는 이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까지 손에 거머쥐게 됐다. 10월 시행인 단통법은 보조금 상한선을 아예 고시에 명시하도록 했다. 새 법에 따라 보조금을 공시해야 하는 통신사는 상한선을 지금보다 더 높이지 말라고 벌써부터 아우성이다. 상한선이 올라갈수록 부담은 늘고 운신의 폭은 좁아진다는 계산에서다. 하지만 단말기를 파는 제조사나 단말기를 사는 소비자는 그 반대 입장이다.
방통위로선 고민이 깊어질 법도 하다. 애당초 보조금 상한선 운운한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시장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보조금의 적정치를 도대체 누가 안단 말인가. 그러나 방통위는 지금의 상황을 오히려 즐기는 눈치다. 통신사도, 제조사도, 소비자도 오로지 방통위만 쳐다보게 해 놨으니 이만한 권력이 또 어디 있겠나.
‘시장과열’ 판단도 정부 맘대로
방통위가 불법 보조금 조사 시 근거로 삼는 ‘시장과열’ 기준도 마찬가지다. 방통위는 2011년 통신 3사에 대한 조사에서 직전 3년간 하루평균 번호이동 건수를 과열 잣대로 삼았다. 언제든 과열이라고 판단하기에 딱 좋은 지표다. 더구나 지금은 2009~2011년 하루평균 번호이동 건수 2만4000건이 과열 기준으로 아예 굳어진 상황이다. 인구 5000만명인 나라에서 2만4000건의 번호이동이 과열이라니. 세상에 이런 코미디도 없다.
이것도 성에 안 찬다고 시장 자율의 이름을 빌려 과열 시 영업을 중지시키는 ‘서킷 브레이커제’까지 구상했던 방통위다. 단통법이 등장한 지금 방통위는 더 무서운 칼을 쥐게 됐다. 방통위가 긴급하다고 판단하면 해당 행위에 대해 일시 중지를 명령할 수 있는 긴급명령중지권이다. 무소불위가 따로 없다.
요금 경쟁이 자유롭지 못한 지금의 통신시장에서 그나마 가능한 경쟁 수단은 보조금과 번호이동뿐이다. 방통위가 이것조차 규제할 바엔 차라리 경쟁하지 말라는 게 솔직하지 않겠나. 방통위의 규제 중독증을 보면 왜 이 땅에서 규제개혁이 안 되는지 답이 절로 나온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그러던 정부가 3년 뒤에는 입장을 바꾼다. 관련 산업 발전을 지원한다며 2006년 3월27일부터 2년간 통신사가 예외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후 2008년 3월27일 관련 규제가 일몰되면서 보조금 지급은 원칙적으로 허용됐다. 하지만 규제 완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금지→예외→허용→27만원
방송통신위원회는 규제 일몰에도 불구하고 행정지도 등 시장개입을 멈추지 않았다.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던 방통위는 전기통신사업법상 부당한 이용자 차별 규제 조항을 들이대며 2009년 3월 통신 3사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여기서 등장한 게 27만원을 초과한 보조금 지급은 위법하다는 기준이다. 가입자 1인당 평균 예상이익(22만2000원)과 가입자 1인당 제조사 장려금(4만8000원) 합계를 넘지 말라는 것이다. 이때 계산된 27만원은 지금도 보조금 위법성을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다.
방통위는 이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까지 손에 거머쥐게 됐다. 10월 시행인 단통법은 보조금 상한선을 아예 고시에 명시하도록 했다. 새 법에 따라 보조금을 공시해야 하는 통신사는 상한선을 지금보다 더 높이지 말라고 벌써부터 아우성이다. 상한선이 올라갈수록 부담은 늘고 운신의 폭은 좁아진다는 계산에서다. 하지만 단말기를 파는 제조사나 단말기를 사는 소비자는 그 반대 입장이다.
방통위로선 고민이 깊어질 법도 하다. 애당초 보조금 상한선 운운한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시장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보조금의 적정치를 도대체 누가 안단 말인가. 그러나 방통위는 지금의 상황을 오히려 즐기는 눈치다. 통신사도, 제조사도, 소비자도 오로지 방통위만 쳐다보게 해 놨으니 이만한 권력이 또 어디 있겠나.
‘시장과열’ 판단도 정부 맘대로
방통위가 불법 보조금 조사 시 근거로 삼는 ‘시장과열’ 기준도 마찬가지다. 방통위는 2011년 통신 3사에 대한 조사에서 직전 3년간 하루평균 번호이동 건수를 과열 잣대로 삼았다. 언제든 과열이라고 판단하기에 딱 좋은 지표다. 더구나 지금은 2009~2011년 하루평균 번호이동 건수 2만4000건이 과열 기준으로 아예 굳어진 상황이다. 인구 5000만명인 나라에서 2만4000건의 번호이동이 과열이라니. 세상에 이런 코미디도 없다.
이것도 성에 안 찬다고 시장 자율의 이름을 빌려 과열 시 영업을 중지시키는 ‘서킷 브레이커제’까지 구상했던 방통위다. 단통법이 등장한 지금 방통위는 더 무서운 칼을 쥐게 됐다. 방통위가 긴급하다고 판단하면 해당 행위에 대해 일시 중지를 명령할 수 있는 긴급명령중지권이다. 무소불위가 따로 없다.
요금 경쟁이 자유롭지 못한 지금의 통신시장에서 그나마 가능한 경쟁 수단은 보조금과 번호이동뿐이다. 방통위가 이것조차 규제할 바엔 차라리 경쟁하지 말라는 게 솔직하지 않겠나. 방통위의 규제 중독증을 보면 왜 이 땅에서 규제개혁이 안 되는지 답이 절로 나온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