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일환 흥국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장(왼쪽), 류재천 흥국자산운용 최고운용책임자(CIO)
성일환 흥국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장(왼쪽), 류재천 흥국자산운용 최고운용책임자(CIO)
"분리과세 하이일드 펀드요? 좋은 상품이긴 한데 하이일드 채권의 물량을 확보하고 매매하기가 까다로워요. 회사채 거래에 대한 노하우 없이는 힘듭니다."

올해 4월 정부가 BBB+ 등급 이하의 하이일드 채권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도입한 '분리과세 하이일드 펀드'가 최근 시장에서 '뜨거운 감자'다. 공모주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공모주 10% 우선배정 혜택이 있는 이 펀드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

하지만 출시된 공모 펀드는 '흥국 분리과세 하이일드' 펀드 하나밖에 없다.

대부분의 자산운용사들은 펀드 자산의 30% 이상을 편입해야 하는 하이일드 채권 거래가 까다롭다며, 운용에 제약이 높은 공모펀드 출시에 난색을 표시했다.

이 틈을 타 지난 4월21일 흥국자산운용이 최초로 선보인 흥국 분리과세 하이일드 펀드는 유일한 공모펀드라는 강점을 앞세워 투자자들의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지난 10일 이 펀드는 출시 두달도 안돼 판매금액이 500억원을 돌파했다.

◆ '채권 강자' 자신감…공모주 투자 바람 타고 자금 급물살

펀드를 운용하고 총괄하는 류재천 흥국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와 성일환 채권운용본부 이사를 만나 펀드를 성공적으로 런칭시킨 비결을 물어봤다.

흥국운용은 전통적인 채권운용의 강자로 알려진 자산운용사다. 전체 운용자산(AUM) 13조원 중 절반 이상인 7조8000억원이 채권자산일 정도.

올해 초에는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에서 채권우수운용사로 선정돼 표창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공모로 분리과세 하이일드 펀드를 출시한 것도 이런 자신감이 배경이다.

펀드 운용을 담당하고 있는 성 본부장은 1994년부터 채권업계에서 일해온 채권 전문가다.

"펀드가 이 정도로 잘 팔릴 거라고는 저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내부에서도 소액만 들어오고 말면 뒷감당이 어려운 상품일 것이라 판단하고 고민이 많았지요."

그 동안은 공모주 시장이 침체된 데다 기존 공모주 펀드들의 성과도 좋지 않아 크게 관심을 모으지 못했다. 하지만 삼성SDS와 에버랜드 등 삼성 계열사들이 기업공개(IPO) 계획을 밝히고 BGF리테일, 쿠쿠전자 등의 IPO 대어들이 속속 나오면서 공모주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그때부터 공모주 물량의 10%를 우선배정 받을 수 있는 분리과세 하이일드 펀드에 대한 투자자들의 문의도 많아졌다. 분리과세 하이일드 펀드는 올해 5월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는 신규 상장 기업부터 우선배정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 동안 일반 공모주 펀드들은 청약을 해도 높은 경쟁률 때문에 순자산가치(NAV) 대비 평균 0.23% 정도밖에 물량을 배정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분리과세 하이일드 펀드는 앞으로 대략 종목당 평균 1% 정도의 물량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일반 공모주 펀드보다 5배 가까이 많은 물량이다.

먼저 지난달 29일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트루윈과 이달 3일 제출한 화인베스틸이 대상이다. 오는 7월 상장 예정인 쿠쿠전자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류 CIO는 "공모주라고 해서 무조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6명의 애널리스트가 해당 종목을 분석해 적정가격을 검토한 뒤 투자할 만하면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의 원칙은 대부분 상장 초기에 이익실현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모주 프리미엄을 최대한 누릴 수 있는 것이 상장 초기이기 때문이다.

펀드의 운용을 위해 한달에 한번씩 채권운용본부와 주식운용본부가 정례회의를 통해 실무협의회를 갖는다. 채권 자산 관리와 주식 공모주 일정 등을 논의하고 대응방안 전략회의를 갖는 것이다.

◆ "하이일드 채권 확보, 흥국운용이라 가능"

시장에서는 이 펀드가 공모주 투자로 인해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펀드 운용의 핵심은 하이일드 채권 운용을 얼마나 잘하느냐다.

공모주 운용 방식은 정형화돼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펀드들이 큰 차별성이 없다. 하지만 하이일드 채권에서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나게 되면 펀드의 성과에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채권에 디폴트가 발생하게 되면 회수기간이 길어지고 회수율도 30% 내외에 불과하기 때문.

게다가 펀드 성격상 30% 이상을 하이일드 채권에 투자해야 하는데, 공모펀드의 경우 총 자산의 10% 이상을 한 종목에 투자할 수 없는 '10% 룰' 때문에 하이일드 채권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갖춰야 한다.

최근 몇년간 웅진홀딩스와 STX그룹, 동양그룹의 법정관리 사태 등이 줄줄이 터지면서 하이일드 회사채 시장이 거의 얼어붙은 상황이어서 처음에는 물량 확보가 힘들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성 본부장은 "최근 회사들과 접촉하다보면 긍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며 "분리과세 하이일드 펀드가 인기를 모으면서 트리플B+급 회사들에게도 자금화색이 돌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채는 주식처럼 장내에서 거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보와 네트워크가 생명입니다. 흥국운용은 그 동안 축적된 노하우가 많기 때문에 하이일드 채권 발행이나 유통 물량 확보가 수월한 편이죠."

디폴트가 나지 않을 우량 채권들로 골라 하이일드 채권 종목 수를 10개 내외로 구성하는 것이 목표다.

류 CIO는 "분리과세 하이일드 펀드는 올해 말까지로 가입이 제한돼 있는 테마성 상품이지만, 그 동안 채권 운용에서 축적된 흥국운용의 노하우를 선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보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김다운 기자 k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