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다른 관객들도 같은 모양이었다. 지난 11일 국립창극단의 신작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사진) 첫 공연이 열린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객석 곳곳에서 폭소가 쏟아졌다. 무대 위 소재로는 불편할 수 있는 성(性)을 적절하게 요리한 결과였다. 선을 지킬 줄 아는 무대였다. 재치 있고 영리했다.

이 작품은 ‘변강쇠전’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만나는 남편마다 요절하는 운명을 지닌 여자 옹녀가 운명처럼 변강쇠를 만나 살림을 차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변강쇠전’은 신재효 선생이 정리한 판소리 여섯 바탕에 포함됐지만 외설로 인식돼 잊혀지다 더 이상 판소리로 불리지 않게 됐다. 국립창극단의 판소리 일곱바탕 복원시리즈 세 번째 작품으로 고전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데 남다른 능력을 지닌 연극 연출가 고선웅 씨가 대본과 연출을 맡았다.

작품에서 가장 돋보였던 부분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다. 감초 캐릭터가 양념처럼 등장해 맛깔나게 극을 버무려줬다. 호색할매(서정금)와 순정할배(박성환), 대방여장승(유수정), 함양장승(우지용)이 인상 깊었다. 국립창극단의 전작 ‘숙영낭자전’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줬던 서정금 씨는 이번 작품에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러다가 아예 감초 전문배우로 나서지 않을까 싶다. 특별출연해 신명 나는 춤을 보여준 윤충일 씨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만 극의 구성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속도감 있는 1막에 비해 2막부턴 시계를 쳐다보게 됐다. 어느 부분은 지루하기도 했다. 교통정리가 잘 안 돼 있는 느낌이었다. 욕심을 버리고 불필요한 부분을 정리하는 게 어떨까. 특히 변강쇠가 의녀에게 시술받는 장면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평탄한 길에 난 돌부리 같았다. 배우들의 연기가 생뚱맞았고, 대사가 들리지 않았다. 공연시간 140분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전체적인 완성도 면에선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외설로만 알려졌던 ‘변강쇠전’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기획 의도가 잘 실현됐다. 적극적인 여주인공으로 되살아난 옹녀 캐릭터는 관객에게 큰 호응을 받을 것 같다. 무엇보다 주역 배우를 비롯한 출연자들의 폭포수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볼 만한 공연이다. 다만 최고 성량을 자랑하는 창극 배우들에게 왜 아직도 마이크를 달아주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 마이크를 떼려고 달오름극장을 리모델링한 게 아닌지…. 다음달 6일까지. 2만~7만원. (02)2280-4114~6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