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리포트] 출구로 다가선 Fed…뒤늦게 돈 푸는 E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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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행보…신흥국, 시장변동성 커질까 '긴장'
재닛 옐런, Fed 수장 되며 테이퍼링으로 긴축 선회
美 경제 회복 탄력 받지만 유럽은 장기불황 우려
ECB 경기부양 실기 논란도
재닛 옐런, Fed 수장 되며 테이퍼링으로 긴축 선회
美 경제 회복 탄력 받지만 유럽은 장기불황 우려
ECB 경기부양 실기 논란도
지난 5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유럽중앙은행(ECB) 기자회견장. 파란 넥타이를 맨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굳은 표정으로 들어섰다. 이날 드라기 총재는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유럽 경제를 살리기 위해 시중은행의 예치금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4000억유로 규모의 타깃형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이라는 ‘플러스 알파’도 내놓았다. 그는 “오늘 발표한 정책들이 끝이 아니다”며 2010년 유럽 재정위기를 정면 돌파한 ‘슈퍼마리오’가 돌아왔음을 선언했다.
이에 앞서 지난 4월29일 미국 워싱턴DC의 미 중앙은행(Fed)에서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금리 인상 시기와 기준금리 변경 여부를 놓고 16명의 FOMC 위원 간 격론이 벌어졌다. 경기회복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서둘러야 한다는 ‘매파’와 미국 경제는 아직 Fed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비둘기파’가 팽팽히 맞섰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재닛 옐런의 Fed가 본격적인 출구전략의 새판을 짜기 위한 물밑작업이 시작됐음을 공식화했다고 평가했다.
세계 양대 중앙은행인 Fed와 ECB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Fed는 긴축 쪽으로 통화정책의 큰 방향을 튼 반면 ECB는 보다 과감한 경기부양책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두 중앙은행 간 이 같은 ‘디커플링’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국제 금융시장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엇갈리는 Fed와 ECB의 행보
두 기관의 공조가 깨진 것은 재닛 옐런이 올초 Fed의 새로운 수장이 되면서부터다. 옐런 의장은 작년 12월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시작으로 출구전략을 착착 진행 중이다. 오는 10월 자산매입 프로그램인 양적완화도 종료된다. 내년으로 예상되는 기준금리 인상에 앞서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 기준금리를 시장을 통하지 않고 Fed가 직접 정하는 ‘역(逆)레포’ 금리로 전환하는 방식을 시뮬레이션하는 등 출구전략의 새로운 로드맵을 짜는 데 골몰하고 있다.
Fed가 이처럼 통화정책 정상화에 조바심을 내는 것은 미국 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미 노동부가 발표한 5월 총고용은 1억3850만명으로 2008년 1월(1억3840만명)을 넘어섰다. 실업률 역시 6.3%로 2008년 9월 이후 최저치다. 마틴 펠트슈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미국 경제는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고 말할 정도다.
반면 드라기 총재는 침체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럽 경제를 구하느라 여념이 없다. ECB가 은행 예치금에 마이너스 금리를 부과하는 극약처방을 내린 것도 기존 정책만으로는 유럽 전역에 퍼져있는 ‘디플레 공포’를 진화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2011년 하반기 3%대(전년 동월 대비)에 달하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줄곧 하강곡선을 그려 5월에는 0.5%에 그쳤다. ECB의 정책 목표인 2.0%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실업률 역시 10%가 넘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ECB의 적극적인 조치가 없다면 유럽은 일본식 장기 불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CB의 실기 vs Fed와 다른 구조적 한계
올초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ECB가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완화적 통화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고 선제적 대응을 주문했다. 이에 대해 드라기는 “유로존 경제는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과 달리 은행 여신 의존도가 높다”며 “충고는 고맙지만 우리의 견해는 다르다”고 반박했다.
유럽의 금융시스템은 채권을 통한 기업의 자금 조달이 전체 자금의 20%에 불과해 미국(73%)과 달리 채권 매입은 경제회복 효과가 작다는 지적이다.
재정 위기를 거치면서 유럽은 독일 등 완만한 경제성장을 겪는 중심 국가들과 급격한 경제적 곤경에 처한 주변 국가로 나뉘었다. ECB는 회원국을 위해 통일된 하나의 정책만 추진할 수 있었다. ECB가 회원국 국채 매입에 나선다면 어느 나라 국채를 얼마나 사줘야 하는지에 대한 갈등도 발생했다.
ECB와 Fed의 정책 목표가 다른 것도 통화 정책의 방향이 엇갈리는 원인으로 꼽힌다. ECB는 물가 관리와 경제 성장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갖고 있는 Fed와 달리 통화정책의 목표가 물가 관리 하나에 집중돼 있다. 1920년대 독일의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통화가치 붕괴의 기억이 남아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물가만 신경을 쓴 ECB가 경제 회복 정책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최근 드라기 총재가 경제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ECB가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돔블란트 ECB 이사는 “TLTRO 등의 정책 효과를 지켜보면서 추가 완화 정책을 시작할 것”이라며 “자산유동화증권(ABS) 활성화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센 ECB 위원 역시 “자산 매입을 통한 QE에 조심스럽지만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흥국은 Fed와 ECB의 행보의 엇갈린 행보가 어떤 영향을 줄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의 ‘두 거인’이 서로 다른 길을 가면서 자칫 시장변동성이 급격히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윤남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ECB가 적극적인 돈 풀기에 나설 경우 Fed가 금리를 조기에 인상하더라도 신흥국에서 급격히 달러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버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심기/김순신 기자 sglee@hankyung.com
이에 앞서 지난 4월29일 미국 워싱턴DC의 미 중앙은행(Fed)에서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금리 인상 시기와 기준금리 변경 여부를 놓고 16명의 FOMC 위원 간 격론이 벌어졌다. 경기회복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서둘러야 한다는 ‘매파’와 미국 경제는 아직 Fed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비둘기파’가 팽팽히 맞섰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재닛 옐런의 Fed가 본격적인 출구전략의 새판을 짜기 위한 물밑작업이 시작됐음을 공식화했다고 평가했다.
세계 양대 중앙은행인 Fed와 ECB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Fed는 긴축 쪽으로 통화정책의 큰 방향을 튼 반면 ECB는 보다 과감한 경기부양책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두 중앙은행 간 이 같은 ‘디커플링’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국제 금융시장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엇갈리는 Fed와 ECB의 행보
두 기관의 공조가 깨진 것은 재닛 옐런이 올초 Fed의 새로운 수장이 되면서부터다. 옐런 의장은 작년 12월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시작으로 출구전략을 착착 진행 중이다. 오는 10월 자산매입 프로그램인 양적완화도 종료된다. 내년으로 예상되는 기준금리 인상에 앞서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 기준금리를 시장을 통하지 않고 Fed가 직접 정하는 ‘역(逆)레포’ 금리로 전환하는 방식을 시뮬레이션하는 등 출구전략의 새로운 로드맵을 짜는 데 골몰하고 있다.
Fed가 이처럼 통화정책 정상화에 조바심을 내는 것은 미국 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미 노동부가 발표한 5월 총고용은 1억3850만명으로 2008년 1월(1억3840만명)을 넘어섰다. 실업률 역시 6.3%로 2008년 9월 이후 최저치다. 마틴 펠트슈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미국 경제는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고 말할 정도다.
반면 드라기 총재는 침체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럽 경제를 구하느라 여념이 없다. ECB가 은행 예치금에 마이너스 금리를 부과하는 극약처방을 내린 것도 기존 정책만으로는 유럽 전역에 퍼져있는 ‘디플레 공포’를 진화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2011년 하반기 3%대(전년 동월 대비)에 달하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줄곧 하강곡선을 그려 5월에는 0.5%에 그쳤다. ECB의 정책 목표인 2.0%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실업률 역시 10%가 넘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ECB의 적극적인 조치가 없다면 유럽은 일본식 장기 불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CB의 실기 vs Fed와 다른 구조적 한계
올초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ECB가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완화적 통화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고 선제적 대응을 주문했다. 이에 대해 드라기는 “유로존 경제는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과 달리 은행 여신 의존도가 높다”며 “충고는 고맙지만 우리의 견해는 다르다”고 반박했다.
유럽의 금융시스템은 채권을 통한 기업의 자금 조달이 전체 자금의 20%에 불과해 미국(73%)과 달리 채권 매입은 경제회복 효과가 작다는 지적이다.
재정 위기를 거치면서 유럽은 독일 등 완만한 경제성장을 겪는 중심 국가들과 급격한 경제적 곤경에 처한 주변 국가로 나뉘었다. ECB는 회원국을 위해 통일된 하나의 정책만 추진할 수 있었다. ECB가 회원국 국채 매입에 나선다면 어느 나라 국채를 얼마나 사줘야 하는지에 대한 갈등도 발생했다.
ECB와 Fed의 정책 목표가 다른 것도 통화 정책의 방향이 엇갈리는 원인으로 꼽힌다. ECB는 물가 관리와 경제 성장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갖고 있는 Fed와 달리 통화정책의 목표가 물가 관리 하나에 집중돼 있다. 1920년대 독일의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통화가치 붕괴의 기억이 남아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물가만 신경을 쓴 ECB가 경제 회복 정책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최근 드라기 총재가 경제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ECB가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돔블란트 ECB 이사는 “TLTRO 등의 정책 효과를 지켜보면서 추가 완화 정책을 시작할 것”이라며 “자산유동화증권(ABS) 활성화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센 ECB 위원 역시 “자산 매입을 통한 QE에 조심스럽지만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흥국은 Fed와 ECB의 행보의 엇갈린 행보가 어떤 영향을 줄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의 ‘두 거인’이 서로 다른 길을 가면서 자칫 시장변동성이 급격히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윤남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ECB가 적극적인 돈 풀기에 나설 경우 Fed가 금리를 조기에 인상하더라도 신흥국에서 급격히 달러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버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심기/김순신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