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머튼 MIT 경영대학원 교수는 “주택연금 활성화를 위해서는 일반인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역모기지론이라는 상품의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로버트 머튼 MIT 경영대학원 교수는 “주택연금 활성화를 위해서는 일반인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역모기지론이라는 상품의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천재들의 실패.’ ‘노벨경제학상의 블랙코미디.’

1998년 세계를 금융위기의 공포로 몰아넣은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파산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로버트 머튼 교수다. 그는 1994년 당시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LTCM 설립에 참여했다. 그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만든 파생상품 가치 측정 공식을 현실에 접목하려는 시도였다.

실제 머튼 교수가 53세의 나이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1997년 LTCM은 41%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듬해 LTCM의 파산으로 그의 명성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고, 노벨경제학상의 권위까지 흔들렸다.

올해 70세인 머튼 교수의 새로운 관심사는 재무설계다. 그는 ‘목표에 기반한 투자’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고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것도 금융연구원이 연 ‘효과적인 은퇴 후 재무설계’를 주제로 한 특별강연을 위해서였다. 강연을 마친 머튼 교수를 13일 따로 만났다.

▷최근 하버드대 명예교수직을 맡았다고 들었다.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고, 지도 역할만 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회사와 중앙은행, 금융당국에서 일할 수 있는 전문가를 배출하는 작업이다. 현실과 이론을 접목하는 일이다. MIT 슬론 경영대학원(MBA) 교수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론과 실제는 다르지 않나.

“물론이다. 이론과 모델을 신봉해서는 안 된다. 모델은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다. 기술이 진보하고 환경이 바뀌면 모델도 바뀌어야 한다. 같은 항로를 가는 비행기라도 개별 조종사의 능력과 판단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기존 모범사례(best practice)는 참고 사항일 뿐이다. 운전할 때 백미러보다는 앞을 더 주시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LTCM의 파산은 파생상품 분석모델의 실패였나

“LTCM이 실패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델의 실패는 아니다. 많은 사람이 모델의 문제와 함께 과도한 레버리지(차입) 및 운용 전략에서 문제점을 찾았다. 하지만 당시 우리가 취급했던 대부분 파생상품은 스와프 중개로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고, 단순했다. 레버리지 비율도 다른 투자은행(IB)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원인이었나.

“당시 LTCM의 규모가 모건스탠리와 맞먹을 정도였다. 자산 규모에 비해 유동성이 떨어지는 자산을 많이 갖고 있었던 게 문제였다. 알려진 것과 달리 러시아에는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다. 투기적 거래도 없었다.”

▷운이 나빴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그런 의미는 아니다. 결과론적이지만 나는 투자에 실패했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졌다. 많은 돈도 잃었다. 미래는 인생과 마찬가지로 예측할 수 없다.”

▷그렇다면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엇인가.

“MIT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투자 원칙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아는 상식이다. 외부에서 좋아 보이는 상품은 반드시 내부에 리스크(위험)가 있다.”

▷위험을 회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목표를 올바르게 세워야 한다. 그래야 투자(자산)를 효율적으로 진행(관리)할 수 있다. 내가 강조하는 ‘목표에 기반한 투자(Goal-based Investing)’의 개념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퇴직연금의 예를 들어보자. 개인뿐 아니라 자산을 관리하는 금융회사들조차 퇴직연금의 목표를 일정한 부를 축적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연금의 최우선 목표는 은퇴 이후에도 고정 수입을 올려 일정한 현금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다.”

▷목표가 달라지면 전략은 어떻게 바뀌나.

“연소득이 5만달러이고 은퇴 후 희망 소득을 70% 수준으로 정하면, 퇴직 후 필요한 연금은 연간 3만5000달러다. 공적연금으로 2만달러를 충당할 수 있다면 나머지 1만5000달러를 투자를 통해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저축을 늘릴지, 또 위험자산인 주식 투자 비중을 늘릴지 등을 결정할 수 있다.”

▷결국 리스크를 안아야 한다는 얘기 아닌가.

“소비를 줄이거나 더 오래 일하면 된다. 자산 운용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도 리스크를 피하는 방법이다.”

▷역모기지론을 얘기하는 것인가.

(역모기지론은 60세 이상 고령자가 보유 주택을 담보로 은행에 매월 일정액을 연금 형식으로 받은 뒤 사후 정산하는 대출 제도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주택이라는 자산을 활용해야 한다. 미래에 재산(주택)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기보다는 지금의 소득이 더 중요하다. 주택연금은 국채보다 낮은 리스크 헤지 수단이다. 자기가 보유한 자산(주택)을 유동화해서 매달 현금을 받을 수 있다. 왜 이를 마다하나.”

▷국가의 자산관리도 마찬가지인가.

“그렇다. 한국 정부의 가상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보면 자산 항목에는 세금, 국고채, 정부 소유 기업과 자산, 국부펀드 등이 있고 부채 항목엔 정부 재정 지출, 국고채 금리, 정부가 지급을 보증한 계약들, 그리고 연금 지급 의무 등이 있다. 이런 표를 놓고 ‘목표에 기반한 투자’를 진행해야 효율적으로 자산을 운용할 수 있다.”

▷한국도 성장률 하락과 글로벌 저금리로 인해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세계 어느 국가, 개인도 저금리를 피할 수 없다.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정부도 연기금을 중장기 국가 재정의 일부로 인식하고 국민연금(NPS), 한국투자공사(KIC) 등 개별 연기금의 자산 운용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국민연금, KIC 같은 국부펀드의 경우 운용의 독립성을 최우선한다.

“정부가 개별 연금의 자산 운용에 간섭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는 석유를 팔아 남은 수익으로 국부펀드를 조성한다.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석유나 석유 관련 상품에 대한 투자는 축소하는 게 합리적이다. 반대로 한국은 국부 대부분이 수출에서 나온다. 국가 전체로 보면 원자재 투자를 늘려야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

▷최근 국제금융시장은 초저금리로 시장 변동성이 줄어든 반면 주가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거품 붕괴 직전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나는 금융 전문가지, 이코노미스트가 아니다. 거시 전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 상황을 날씨에 비유하자면 비가 국지적으로 내리지 않고 글로벌하게 내린다. 원칙만 따진다면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자산을 해외로 분산하는 게 합리적이다.”

▷한국은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길어지고 있다. 개인들은 어떤 투자 결정을 해야 하나.

“가격 역시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현재 가격에 모든 경제주체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반영돼 있다. 이럴 때도 투자의 목표가 중요하다. 목표에 따라 리스크가 달라진다. 거주 목적이라면 집을 사야 한다.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면, 안정적인 거주를 위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자 이익이 목적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로버트 머튼 교수는

금융에 수학 접목…파생상품 시장 키운 일등공신


1997년 파생상품의 가치 측정 공식을 개발한 공로로 199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금융전문가.

그가 ‘블랙-숄스 방정식’을 활용해 마이런 숄스 스탠퍼드대 교수와 공동개발한 파생상품 가치 측정 공식은 전 세계 파생시장을 급성장시켰다.

1944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1966년 컬럼비아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과학석사학위를 받았다. 1970년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꿔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수학을 금융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전공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당시 지도교수가 미국인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새뮤얼슨이다.

좌동욱/이심기 기자 leftking@hankyung.com